ⓒ시사IN 한향란총선 지분 관련 문제는 정동영 후보(오른쪽)의 범여권 후보 단일화 추진에 걸림돌이 되었다.

거칠게 말해서 17대 대선은 12월5일 오전 11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검찰의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 결과 발표가 있던 이 시각을 기점으로 대선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발표를 통해 1위를 달리던 이명박 후보의 가장 큰 위협 요소가 제거되었다. 반면 다른 후보에게는 선거판의 역동성을 살릴 거의 유일한 변수가 사라져버렸다. 

선거 구도가 ‘이명박 대 반이명박’으로 형식이 변했지만, 내용상으로는 대선의 성격이 ‘총선 전초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제 대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구도 변화보다는 총선 당선을 위한 정계 개편이라는 기준으로 판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회창-심대평 연대든, 범여권 단일화든 이제 대선보다 총선을 중심에 놓고 봐야만 판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는 의미다. 

‘총선 전초전’의 틀로 이번 대선을 볼 때, 역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를 어느 쪽이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 검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BBK 특검 법안을 상정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계속 연대를 유지한다면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출발 단계부터 절름발이 정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선에서 반이명박 진영이 반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후보들의 연대가 지극히 느슨하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이 무산된 점, 범여권 후보 단일화가 계속 공전하는 모습은 반이명박 연대의 지속 가능성을 어둡게 만든다.  

총선은 이제 대선 후보에게도 화두다. 사표 심리를 방지하기 위해 후보가 총선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문국현 후보는 대전 유세에서 “기존 정치인은 한나라당에 있든 신당에 있든 다 반성해야 한다.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을 통해 부패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 지도자들을 청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보수 논객 조갑제씨는 “이회창 출마 직전부터 예언했던 ‘보수 경쟁에 의한 보수 정치 시장의 확대’가 이뤄졌다. 이 확대된 여론시장을 잘 관리하면 내년 총선 때는 보수 양당 구도를 만들어 좌파를 정치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이런 극우파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고 있다. 일단 대선에서 승리하면 총선도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 측은 ‘거대 여당’의 출범을 위해 이회창 후보가 정치적 근거로 삼고 있는 보수 유권자와 충청 표심을 붙들 방책을 고민하고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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