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지 스스로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거나 목숨에 버금가는 것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가 김연수.

어떤 세대는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세대는 가질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내 가난한 기억의 페이지를 만지작거리며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쓸쓸히 되묻는. 그가 그 시대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잘 ‘앓았기’ 때문에, 섣불리 흉내내거나 열심히 학습할 수도 없는.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그들의 기억을 맹렬히 질투했다. 막상 그들은 너무 아픈 기억이기에 도저히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도리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질투의 초점은 바로 그것이 ‘제대로 된’ 아픔이라는 것, 아픔의 질량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그만큼 바투 다가가 있기에 세상과 내가 결코 ‘따로’일 수 없었던, 그 밀착감에 있다.

그런데 김연수 소설의 놀라움은 결코 내 것일 수 없는 타인의 기억의 카오스를 끝내 우리 모두의 기억의 코스모스로 역전시키는 이야기의 연금술이다. 18개의 챕터는 저마다 서로 완전히 격리된 인물들을 다룬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1000만 개의 이야기로 주름지며 저마다 그들 각각과 연루된 이들의 기억창고 깊숙이 숨죽인 치명적 기억의 세포를 건드린다.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봉합될 수 없는 이 다채로운 이야기의 아우성은, 폭력의 시대에 결코 그 폭력을 내면화하지 않았던, 그래서 실패했지만 그래서 끝내 망가지지 않은 작고 여린 사람들의 투쟁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아파하고 죽어갔지만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고통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던 시절. 우리는 그 시절을 너무 쉽게 잊었다. 이들은 대단한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스스로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거나 목숨에 버금가는 것을 잃었다.

이쯤 되면 비장미에 절어 숨막힐 법도 하건만, 이 소설의 진정한 놀라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으면 그악스럽게도, 게걸스럽게도 너무나 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죽음보다 결코 낫지 않은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는, 카페인이나 알코올이나 코카인이 아니라 바로 ‘삶’ 자체에 기쁘게 중독되게 만드는 서늘한 마력이 있다.

온갖 수사와 논리를 총동원해 ‘너’는 ‘나’가 될 수 없음을 가르쳤던 책들에 지친 독자들이라면, 이렇게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나’일 수 있음을 기쁘게 배울 수 있는 소설과 함께 이 추운 세계를 견디자고, 그들의 시린 발걸음 위에 이 책을 포개놓고 싶다. 


단편집 풍년 권여선 골수 팬 많아

올해는 장편소설이 독자의 저변을 넓혀가면서 풍성한 성과를 거둔 반면, 그에 대한 평자의 평가는 인색한 편이었다. 장편으로는 황석영의 〈바리데기〉와 김훈의 〈남한산성〉, 그리고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정도가 꼽혔다. 이에 반해 단편집은 추천작이 많았다. 윤대녕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 은희경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그리고 한강(〈채식주의자〉)과 박완서(〈친절한 복희씨〉), 윤성희(〈감기〉)의 작품 등이 그 반열에 올랐다. 조경란(〈혀〉), 김태용(〈풀밭 위의 돼지〉), 윤이형(〈셋을 위한 왈츠〉), 윤영수(〈내 안의 황무지〉), 김미월(〈서울 동굴 가이드〉)의 작품집도 이목을 끌었다. 

저변이 넓지는 않지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소설가로는 단연 권여선을 꼽을 만하다. 두 번째 소설집 〈분홍 리본의 시절〉이 여러 평자를 매혹시키고 있다. 문학 평론가 정여울은 “그녀의 소설은 자신을 찌르는 칼이다. 고통을 발산하지 못하고 켜켜이 묵혀둔 존재들이 끝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이야기를, 끝내 버티는 사람들이 아니라 매일 어이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라고 극찬했다. 절판된 그녀의 첫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1996)가 올해 재출간되었다. 

노순동 기자

추천인:정여울(문학 평론가) 정홍수(문학 평론가) 진정석(문학 평론가) 최성실(문학 평론가)

기자명 정여울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