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운 판사 법원 내부 통신망 게시글

저는 2007년 11월 30.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위반(뇌물) 등으로 2년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피고인 신구범의 큰아들 신용인 판사입니다. 아버지 사건의 내막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던 저로서는 막상 다시 유죄 판결이 선고되자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명색이 판사인 제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 억울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선고 다음날 참담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서울구치소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하셨습니다. “도대체 그들이 나를 감옥에 넣을 권한이 있느냐? 만일 내가 죄가 있다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죄가 없다. 어떻게 그 따위 엉터리 재판을 하느냐? 나는 이제 사법부를 믿지 않는다. 상고를 하지 않겠다. 더 이상 사법부가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연연해하지 않겠다.”

제가 아는 한, 대다수 판사는 참으로 성실합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열심히 일합니다. 특히 유·무죄 판단을 할 때 최선을 다하여 공정하게 판단하고자 노력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며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판사를 철저하게 불신하고 아예 상고까지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갑자기 제 자신은 재판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나름으로는 공정하게 재판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오판을 해서 당사자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 일을 통해 그 벌을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아버지 사건에 왜 유죄 판결을 내렸는지 도대체 그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른바 도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생긴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진실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들었고 그 결과 오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아버지가 법원의 권위에 도전한 사건을 계기로 해서 법원의 판단이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농·축협 통합 반대운동을 하자 그와 관련해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30억원 뇌물 수수 혐의를 추가해서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영장 전담판사는 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하자 아버지는 죄가 없으니 판사 신문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만용(?)을 부렸고 당직 판사에 의해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되었고, 2003년 6월11일 1심에서 특가법 위반(뇌물)의 점에 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심 무죄 판결이 선고되기 불과 20일 전인 2003년 5월 아버지는 도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대법원에 담당 재판부의 재판 회피와 관련해 인용 사유와 근거, 골프 회동 사실 등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기자회견이 있은 후 9개월 정도 지난 2004년 2월 항소심은 특가법 위반(뇌물)에 관해 유죄를 인정하며 2년6월의 형을 선고했고, 2007년 1월26일 대법원은 전부 파기환송하면서 특가법 위반(뇌물)의 점을 역시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지난 11월30일 고등법원은 대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물론 도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재판장이 담당 사건의 피고인이었던 현직 도지사의 변호사와 골프를 친 사실도 없고, 그 사실이 문제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피고인 측에 로비한 바도 없으며, 회피 신청 사유도 정당했다면 이를 가지고 기자회견까지 연 아버지의 태도는 법원의 권위와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부당한 도전이므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담당 재판장이 피고인 측 변호사와 골프를 함께 쳤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아버지를 비롯한 피고인들 측에 로비를 했으며 결국 문제가 되자 몽땅 아버지 탓으로 돌리면서 회피신청을 했습니다. 또한 제주지방법원과 대법원은 진실을 규명하기보다는 사건 은폐를 기도하면서 이에 대해 정당하게 항의하는 아버지를 오히려 매도하는 분위기로 몰고 갔다면, 그 결과 아버지의 정치 생명은 끊어지고 감옥에까지 가게 되었다면 이는 범죄행위나 다름없고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도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점의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첫째, 담당 재판장이 당시 사건의 피고인이었던 우근민 도지사의 변호사와 함께 골프를 치고 향응을 대접받은 사실이 있었는가.

둘째, 골프 회동 사실이 기사화될 여지가 보이자 재판장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당시 피고인들이었던 우근민 도지사와 아버지 측 변호사를 각각 상대로 해서 기사화를 막아달라고 로비를 한 사실이 있었는가.

셋째, 재판장의 회피 신청 사유는 무엇이었으며 그에 대한 인용 이유가 무엇이었나.

넷째, 제주지방법원과 대법원은 사건의 진상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어떠한 조처를 했는지, 또한 사건 은폐 기도는 없었는가.

위 네 가지 점이 분명하게 밝혀진다면 저의 결론이 맞는지 틀린지가 가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틀렸다면 어떠한 비난과 징계도 달게 받겠습니다. 끝으로 이런 글을 게시하여 전국에 계신 법원 가족 여러분께 누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