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
박성오씨(35·코스콤네트워크 여의도출장소장)의 직업은 네트워크 엔지니어다. 그러나 요즘 그가 만지는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조리 도구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이래, 동료 90명의 밥을 짓는 것이 그의 일이다. 살림 경험 없는 총각이 물도 나오지 않는 천막 농성장에서 부엌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석 달 가까이 파업하다 보니 이 일도 거뜬해졌다. 최근에는 동료들과 함께 김장 김치까지 담갔다. 박성오씨는 부엌일보다 언제 일터로 돌아갈지 알 수 없어 더 힘들다고 한다.

그가 일터로 돌아갈 기회는 있었다. 회사는 그에게 노조를 탈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회유했다. 하지만 동료들을 버리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 자회사에서 15년 동안 일해왔다. 코스콤 직원들과 한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을 했지만, 자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그의 월급은 절반밖에 안 되었다. 코스콤 동료들이 회사로부터 간식비까지 받을 때, 그는 지갑을 털어 굶는 자회사 동료들의 밥을 샀다.

비정규직법 시행 직전인 지난 5월, 코스콤이 칸막이 하나로 코스콤 직원과 자회사 직원을 가를 때까지 그는 자신이 불법으로 파견된 자회사 비정규직 직원이라는 것을 몰랐다. ‘조금만 기다리면 코스콤 직원과 똑같이 대우해 주겠다’는 코스콤 측의 말을 믿었던 것이다. 박성오씨는 “한 일터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회사 직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밥을 짓는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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