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 전문기자남한을 방문했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애매모호한 대답을 '반승낙'이라고 여긴 청와대가 종전선언 추진을 위해 부랴부랴 백종천 안보실장을 워싱턴에 보냈으나 결과는 허무했다.
이쯤해서, 종전선언의 내력을 다시 한번 짚어보자. 이 역시 논문감이다. 동북아를 주름잡는 플레이어들의 이해관계와 기만의 외교술, 국가 이익과 정권 이익의 상관관계 등 많은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의문의 방남’에 이은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의 ‘화급한 방미’,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한·미 양국은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종전선언을 위한 4자 정상회담이 아니라) 북핵 불능화와 신고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라는 백 실장의 말 속에 그의 방미 성과가 어떠했는지 전후 사정이 다 들어 있다. 라이스 장관이야 그렇게까지는 안 했겠지만, 국무부 대신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한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이나 퀴노네스 전 북한 담당관의 말은 거의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구느냐’는 투였다. 굳이 동맹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이처럼 막말 수준의 얘기가 오고 가도 되는가 싶을 정도이다.

따지고 보면, 빌미를 준 건 미국이다.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사가 있다고 느닷없이 던진 한마디가 일의 시작이다. 발언의 의도는 정확지 않으나, 2006년 10월의 남북 간 비밀 접촉을 견제하고 관심을 분산하기 위한 미국 측의 고도의 책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시 발언에서 ‘종전선언’이라는 이벤트를 착안한 건 청와대였다. 남은 임기 1년 동안 역사에 남을 업적으로 추진하기에 맞춤하다고 본 것 같다. 미국은 청와대의 속셈을 들여다본듯 줄을 늦췄다 조였다 해왔다. 올해 2월께 워싱턴발로 터져나온 ‘라이스 국무장관의 4, 5월 방북설’도 한 예다. 이를 계기로 6월이나, 7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도 가능한 게 아니냐는 장밋빛 환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한국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미국의 ‘미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FTA 문제가 지나가자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빌미로 모든 일정을 뒤로 늦췄다. 미국 협조하에 ‘거사’를 꿈꾸던 청와대는 BDA 사건을 거치면서, 평양에 대한 직접 공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뉴시스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환송오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10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노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돌파구를 열려고 작심했던 것 같다. 이틀째인 10월3일 오후. 약 1시간에 걸쳐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서도 두 차례나 평양에 밀사를 보냈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도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종전선언을 써먹었다. 협의 당사자에서 중국을 제외할 수 있다고 치고 나옴으로써, 대중 협상력을 끌어올렸고, 국방장관 회담에서 ‘종전선언의 환경 조성에 노력하자’고 공언을 해서, 사실은 미국을 압박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느닷없이 내려 보낸 것 역시 북한식의 전형적인 블러핑(bluffing: 허세 부리기) 외교이다.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종전선언에는 사실 관심이 없으면서도, 이처럼 허세를 부려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한 것이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방남은 전형적인 북한식 블러핑 외교

김양건 통전부장이 내려왔을 때 남쪽은 남쪽 대로, ‘내년 1월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남과 남북 간 종전 합의, 그리고 미국(또는 미국과 중국)의 지지선언’라는, ‘2+1(2) 방안’에 동의를 얻어내고자 애를 썼다고 한다. 김 부장은 이에 대해 ‘잘 해봅시다’ 수준의 대답만 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김 부장의 애매모호한 대답을 ‘반승낙’이라 여기고 이제 워싱턴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워싱턴은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북한의 핵 신고 목록과 관련해 미국이 얼마 전부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무기급 플루토늄 문제, 그리고 시리아로의 핵 이전 문제 등 해묵은 이슈를 다시 들고 나왔다. 부시가 한편으론 친서를 보내 북을 달래면서도 북한의 신고 절차를 어렵게 만들어 테러지원국 해제 날짜를 늦춤으로써, 1월 중 종전선언을 무산시키기 위한 복잡한 계산이 엿보인다.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힐 차관보가 지난 6일, ‘핵 신고 문제를 놓고 북한과 이견이 생겨 핵 폐기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한 것 역시 정해진 수준이다. 

부랴부랴 워싱턴에 달려간 백 실장이 미국 측으로부터 들을 얘기는 처음부터 뻔했던 것이다. ‘이런 판국에 무슨 종전선언이냐.’ 국가 외교력을 1 년씩이나 소진하며, 추진해온 종전선언의 허무한 ‘종전’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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