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정책의 태동기라 할 노태우 정부 말기,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안보 부서 내부에서 대북 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만 남북 관계나 경협이 가능하다는 연계전략(linkage strategy)파와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도 남북 관계를 병행 발전시켜야 한다는 병행전략(parallel strategy)파 간의 대립이었다.
초기에는 병행전략파가 승리해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되는 등 성과를 거뒀으나 후기 들어서는 연계전략파가 권력을 장악해 김영삼 정부까지 이어졌다. 한나라당 대북 정책의 뿌리 역시 연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에서 갈려 나온 이명박·이회창 후보가 남북 관계의 진전이나 경협을 핵폐기 이후로 미뤄놓은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이명박 후보는 ‘북한이 핵폐기를 약속하고 행동에 옮긴 시점’부터 대화가 가능하다고 다소 융통성을 두고 있는 반면, 이회창 후보는 사실상 완전 폐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더구나 이회창 후보는 북한의 변화와 이를 위한 철저한 상호주의를 조건으로 첨부함으로써, 이명박 후보보다 오른쪽으로 서너 발자국 더 나간 상태다.
김영삼 정부 시절로 비교해보면, 이명박 후보가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직후 다소 옷깃을 풀어헤치고 북한과 접점을 모색하던 김영삼 정부를 연상케 한다면, 이회창 후보는 봉쇄론이 횡행했던 1994년 6월 시점을 떠올리게 만든다. 봉쇄정책은 대화 중단과 전쟁 위기까지 비화해 결국 카터라는 외세의 개입을 초래하고 말았다.
병행론,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약발' 증명
이처럼 연계론이 남긴 기억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반면에 병행론은 1,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냄으로써 약발을 입증했다. 따라서 병행론의 적자를 자임하는 정동영 후보의 공약은 그만큼 효과가 검증된 면이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초기처럼, 말로만 병행론이지 실제로는 연계론에 가까웠던 때도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10년의 대북 정책 평가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회창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양극단에 서 있고, 이명박 후보는 중간쯤이다. 정동영 후보는 본인 스스로 노무현 정부 대북 정책의 입안자라는 자부심이 있고 정책적으로도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을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지난 10년 대북 정책의 결과로 지금 남은 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나친 자부심은 금물이다. 그동안은 혼자 뛰어 1등을 했는지 모르나 미국·일본·중국이 막대한 자금과 기획력으로 북한을 노크하는 시대에도 과연 먹혀들어갈 정책인지 점검해봐야 한다.
이회창 후보는 아예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이 핵실험을 결행함으로써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가 다른 얘기다. 이회창 후보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철저한 상호주의와 북한의 변화 유도, 인권 문제 제기 따위야말로, 북한의 체제 특성상 핵실험보다 더 심한 반발을 초래할 소지도 있어 보인다.
이명박 후보는 본인 주장대로 이 문제에서도 약간의 실용주의 태도를 취한다. 7·4남북 공동성명에서 최근의 10·4 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간의 기존 역사는 존중하되, 잘못된 부분을 고치겠다는 태도다. 특히 북한이 개혁·개방 의지를 표명하면 ‘비핵개방3000’ 구상에 따라 적극 지원해 매년 15~20%의 경제성장, 그리고 10년 뒤 국민소득 3000달러의 국가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론이 없다. 북한은 박정희 시대 남한과 다른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에 맞는 방법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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