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검찰은 증거 3개를 제출했다. 첫 번째는 한 전 총리의 아들 박아무개씨(25)의 유학과 관련된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골프채 결제 관련, 세 번째는 윤아무개 경호인 증언을 탄핵한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첫 번째 증거로 박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진첩과 일기장을 공개했다. 아들의 일기장 중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짓도 도대체 몇 번째인가. 1년이라도 한 곳에 정착해서 살고 싶다”라는 구절에 형광펜을 친 종이를 내밀며, 한 전 총리측이 아들이 이사를 다니지 않았다고 한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미니홈피 캡쳐 사진이 증거로 제출되자, 방청객 자리에서는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2010. 4.1 목요일 12차 공판 11시 40분 시작, 20시 49분 끝. -한명숙 피고인 신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형두 부장판사(이하 판) -한명숙 전 총리 측 변호인(이하 변) -권오성 부장검사 등 (이하 검)

ⓒ사진공동취재단현장 검증에 나선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
■재판부, 소송지휘권 행사

재 : 어떻게 할지 검찰 의견은? 검 : 피고인 신문제도에서 검찰의 신문권을 인정해줘야 한다. 검찰의 질문을 막을 수는 없다. 변 : 검사의 신문권 보장에만 포커스를 맞춰서는 안 된다. 다만 진술 거부권 행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나 찾아가는 방식이어야 한다. 재 : 재판부는 정치적인 이 재판을 가장 법적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그래서 다수의 재판부가 따른다는 〈법원실무제요〉의 ‘피고인이 진술 전체를 거부할 경우 피고인의 의사를 듣고 다음 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에 따라 다음 절차로 넘어가려했다. 그러나 검찰의 의견과 제시하는 근거에 따라 피고인 신문을 안 하고 넘어갈 권한이 없는 것 같다. 재판을 못하겠다고 나오시니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래서 재판부가 고심하다가 한 방법을 더 생각했다. 검찰은 질문을 쭉 읽겠다는 거죠?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진술을 강요 유도 위압해서도 안 되고 모독적이어서도 안 된다. 검찰과 변호인이 신문 사항을 협의해서 그 부분에 다툼이 생기면 재판부가 중재하는 식으로 하자. 읽으면서 (조율)하는 건 이미 신문이 되니 미리 하자는 것이다. 검찰이 읽을 권한을 굳이 달라니 주겠다. 사전에 협의해서 저기(형사소송법 진술 강요 등)에 해당하는 부분은 빼고 하자. 검 : 저희 신문권을 피고인과 상의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럼 신문사항 없이 그냥 신문하겠다. 변 : 1시간 반 동안 휴정하고 검토를 해보자.

14시 10분 개정

검 : 신문사항 드렸고, 일부 수정해서 가져왔다. 신문사항을 드리면 어떤 항목이 문제가 되는지 말해주면 된다. 변 : 피고인의 권리도 있다. 지금 검찰이 말하는 그런 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재 : 방법에 대해서는 소송지휘권을 행사하겠다. 검찰은 신문사항을 제출하라. 변호인 측은 신문사항을 검토하고 문제가 있는 항목에 대해 이야기를 해라. 검토 시간을 위해 휴정한다. 4시에 다시 시작한다.

16:00 개정

■‘빨간펜 교사’ 재판부 첨삭 받은 검찰

변호인 측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동그라미 표시해서 재판부에 넘겼고, 그 부분을 재판장이 다시 검토해 신문 사항에 넣을지 말지를 정했다. ‘빨간펜 교사’가 된 재판부와 ‘첨삭’을 받는 검찰의 모습이 연출되었다. 재판부는 “모욕적인 질문이니 빼라” “(질문이) 좀 아닌 것 같다” “(이 구절은) 빼도록 해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중간 중간에 검찰은 반발하기도 했지만, “네 알겠습니다” “생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자 검찰이 먼저 나서서 “~ 바꾸면 되겠습니까?”라며 신문사항을 정정하기도 했다.

재 : 신문 1-가, ‘피고인은 곽영욱을 알고 있나요?’ 빼시죠(방청석 웃음). 재 : 이 부분은 물어볼 필요가 없죠. 사실이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 : 이 부분은 모두가 다 아는 부분이잖아요. 검 : 이게 누구의 신문사항이냐. 이렇게 조정하면 신문사항이 아니지 않느냐. 재 : 하는 말은 조서에 써 넣겠다. 굳이 질문한다고 해서 시간 드린 거 아닌가. 재 : ‘있지요’라고 물으면 안 된다. 유도신문이다. ‘있었나요’라고 물어라. 재 : 모욕 주는 질문도 빼라. 피고인 신문은 증거 조사가 다 끝난 다음 한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인데, 이미 명료해진 상황에서 물어볼 필요가 없는 내용은 빼야 한다. 증인과 증거로 확실한 건 물어봤자, 피고인 답변은 보충자료로 본다.

재판장은 “지금 20페이지 중에 7페이지 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검찰은 “저희가 조종을 하겠다”라고 했고 재판장은 “그럴 필요 없다. 소송지휘권 행사해달라고 했으니 제가 해야죠”라고 말했다.

재 : 파항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검 : 그냥 물어본 겁니다(방청석 웃음).

질문을 고치고 바꾸는 과정이 비슷하게 반복되며, 시간이 오후 6시에 가까워지자 방청석에서는 “첨삭 언제까지 하나”라는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한 전 총리 아들과 관련된 신문사항은 변호인 측이 비공개로 신문사항 조율을 하자고 요청해 잠시 비공개로 전환이 되었다. 신문 사항 조율은 3시간 40분이 걸렸다.

ⓒ뉴시스김준규 검찰총장 지시로 대검은 31일 강압수사를 탈피한다며 설득과 경청의 수사 기법을 담은 '조사ㆍ신문 핵심원리 실무 매뉴얼'을 발간했다. 그러나 한명숙 전 총리 공판 과정에서 검찰은 아들 미니홈피까지 뒤져 먼지털이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소리 없는 메아리 신문 19시 43분 다시 개정했다. 한명숙 피고인에 대한 검찰 측 신문이 시작되었다. 한 전 총리는 포괄적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며 한 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대답 없는’ 한 전 총리를 향해 질문을 이어갔다.

검 : 곽 전 사장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나? 검 : 2009년 12월4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곽 전 사장과 인사를 추천할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고 했다. 인터뷰는 피고인과 상의된 내용인가? 검 : 피고인은 곽 전 사장을 언제 누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나? 검 : 곽 전 사장이 2000년 여성단체행사 때, 한 전 총리에게 1000만원이 담긴 봉투를 가지고 갔다는 데 그런 사실이 있나?

검 : 2001년에 식사 한 적 있나? 식사를 마치고 어디를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골프샵이었나? 검 : 각자 차량을 타고 갔나? 검 : 곽 전 사장이 피고인에게 무작정 따라 오라고 했나? 검 : 행선지 미리 말 안 해줘도 따라갈 정도의 친분이 있었나? 검 : 골프 백화점인 걸 알면서 거기 들어간 이유가 뭔가? 검 : 곽 전 사장이 골프채를 사주던가?

검 : 피고인은 곽 전 사장에게 골프채를 받은 이후에도 골프를 치지 않았나? 검 : 피고인은 골프비용을 곽 전 사장에게 대납하게 한 적이 있었죠? 재 : ‘있었죠’가 아니라 ‘있었나’라고 물어야 한다. 유도신문이다. 검 : 2009년 12월7일 한 전 총리는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렇게 인터뷰 한 적이 있나? 검 : 2008년 2009년 제주도 골프 빌리지,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에게 먼저 빌려달라고 했나?

검 : (골프장 등록카드 보여주며) 저기 쓰여 있는 한명숙 이름과 번호가 피고인이냐? 검 : 피고인의 올케와 동생은 피고인이 골프를 거의 못 친다고 했지만, 캐디는 90~100타 친다고 했다. 어느 게 맞나?

검 : (골프 친 기록을 보여주며) ‘한이숙’으로 기재되어 있는 기록이 피고인이 친 거 아닌가? 검 : 2006년 3월23일 총리 지명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3년 전 골프 연습을 했고, 필드에 몇 번 나간 적이 있다”라고 말 한 적이 있나? 검 : (곽 전 사장 수첩 보여주며) 2004년 2월6일 환경부 장관 퇴임 전, 2004년 7월20일 국회의원 취임 즈음에, 곽 전 사장 만난 적 있나?

검 : 그 무렵에 곽 전 사장에게 수표가 담긴 돈 봉투를 선거후원금으로 받은 적 없나? 검 : 선거 전후해서 곽 전 사장을 따로 만난 이유가 뭔가? 검 : 따로 식사해서 후원금 받은 적은 없나? 검 : 곽 전 사장에게 “돈 가지고 갔는데 돈 못줘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나? 검 : 2009년 여름, 피고인이 곽 전 사장에게 골프 빌리지 빌려달라고 해서 아들이 사용하기 위해 예약한 걸 양도한 사실 아나?

검 : 2006년 12월20일 오찬의 취지는 뭔가? 검 : 총리 시절 공관 본관에서 오찬 할 때, 취지를 참석자에게 알려주지 않나? 검 : 정세균 당시 장관을 위한 자리에 강동석 전 장관과 곽영욱 전 사장은 왜 불렀나? 검 : 혹시 피고인은 정 전 장관으로 하여금 곽을 석탄공사 사장으로 추천하려던 거 아닌가? 검 : 오찬 전, 곽 전 사장과 저녁 9시 이후에 통화한 적 있나? 검 : 총리로서 공기업 사장에 대해 장관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게 금지되어 있나? 검 : 훌륭한 인재가 있으면 장관이나 인사수석에 추천하나? 검 : 오찬을 마치면 누가 먼저 나가나?

ⓒ사진공동취재단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이광재 의원을 안고 펑펑 울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검 : 식사하러 외부에 나가는 수행과장에게 핸드백을 맡기면 소지품을 사용할 수 없어 불편하지 않나? 검 : 한 전 총리 쪽 사람이 윤아무개 경호원을 만나 녹음 녹취한 걸 본 적이 있나? 검 : 아들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미국에서 유학 중인가? 검 : 유학비용은 어떻게 부담하나? 검 : 대부분 가족과 친지의 도움으로 부담한 게 맞나?

검 : 가족과 친지의 도움만으로 유학비용이 부족하지 않았나? 검 : 2005년 7월1일부터 2007년 12월31일까지 국내에서 환전해 외국에 가져간 기록이 있나? 검 : 그 기간 중, 남편은 11회 아들은 4회 해외 출국했다. 그 비용 어떻게 조달했나? 검 : 혹시 평소에 집에 외화를 가지고 있나? 검 : 아들이 버클리 음대를 다닌 적은 없나?

검 : 아들이 2007년 8월28일 벙커힐 커뮤니티 칼리지를, 2008년 1월2일 엠마뉴엘 칼리지를 등록했나? 검 : (자료를 보여주며) 아들이 버클리음대를 2007년 6월29일부터 2007년 8월10일까지 다니면서 학비로 4690불을 냈나? 검 : (아들 미니홈피 캡쳐 사진을 보여주며) 아들이 버클리 다닐 때 찍은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린 거 본 적 있나? 검 : 버클리는 여름학기 학비만 4690불이다. 어떻게 마련했나? 검 : 벙커힐에서 외국학생은 한 학기 학비가 1625달러인가 4625달러인가? 검 : 2008년 1월 엠마뉴엘 칼리지 입학을 하려면, 은행잔고가 4만6600달러가 있어야 했다. 당시 아들 계좌에 그만한 돈이 있었나?

검 : 아들이 미국에서 계속 지인 집에 머물러 렌트비가 필요 없다고 했다. (증거자료 제시하며) 벙커힐커뮤니티 있을 때 주소와 엠마뉴엘 칼리지 등록 당시 주소가 다르다. 이사를 간 건가? 검 : 아들은 여러 번 이사를 갔나? 검 : 곽 전 사장에게 아들이 유학 준비 중이라고 말한 적 있나? 검 : 곽 전 사장이 유학비용 도와줄 수 있다고 말 한 적 있나? 검 : 최근 곽 전 사장과 좋지 않은 일이 있나?

이 모든 질문에 한 전 총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찰은 1시간 10분 동안 준비해온 질문만 읽었다. ‘대답 없는 메아리’로 신문을 끝낸 검찰은 재판장에게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으로 검찰이 제대로 신문할 수 없게 되었다. 제대로 신문을 보장해주지 않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부분을 꼭 조서에 남겨 달라”고 말했다.

변 : 검찰의 신문에 두 가지 부분에서 지적하겠다. 신문사항이 20장인데 이 중 콘도 관련이 10장 가까이 되고, 아들 유학 관련이 5장이다. 검찰 신문은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받아서 아들의 유학비용으로 썼다는 취지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 해명이 되면 공소를 취하할 건지를 묻고 싶다. 벙커힐 칼리지 학비 내역을 1625달러라고 한 건, 그 학교 쪽에서 현금으로 계산한 부분만 보내줬기 때문이다. 4625달러 중 현금으로 1625달러, 나머지는 신용카드로 했다. 학교에서 빠뜨리고 안 보내 준 건데, 3000달러 빠뜨려서 죄를 면하려고 하겠나. 검찰이 조회하지 않은 2008년 12월까지 미국으로 보낸 유학비용에 대해서도 송금기록을 재판부에 냈다. 달러의 출처까지 다 밝혀 놨다. 엠마뉴엘 칼리지 등록 때 은행 잔고는 4만6600달러 맞추기 위해 지인들에게 돈을 조금씩 단기 이체 받았고 그 내역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의심과 문제제기를 구분해야 한다.

검 : 제출된 자료를 검토한 후 의견을 밝히겠다 재 : 검토해 보시고 이걸로 충분하면 철회해주십시오(웃음).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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