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는 ‘종교계에 대한 전방위 접촉 확대’지만, 내용상으로는 불교계와 천주교에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봉은사 명진 스님의 폭로로 불거진 ‘안상수 외압 파동’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만든 건 불교계 내부 문제이고, 이명박 정부와 불교계 지도부는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청와대 박형준 정무수석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봉은사 외압 얘기는 (보도되기 전까지는) 금시초문이었다. (명진 스님) 얘기만 보면 종단의 자율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조계종 총무원이 불쾌해할 사안이다. 게다가 지난 해 11월 있었던 일이 몇 개월 후인 지금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난센스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초기에 불교계와 이런저런 마찰이 있었지만 그동안 정부 입장을 잘 설명드렸고, 지금은 공식 기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안상수 외압 파동’은 불교계 지도부가 알아서 정리하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에 반해 천주교의 4대강 반대운동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박형준 수석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진행하는 데 신경을 쓰다보니 홍보와 소통에 상대적으로 소홀함이 있었다. 천주교에서 발행한 ‘만화’(〈창조질서 거스르는 4대강 사업은 멈춰야 합니다〉)도 봤는데 실제를 잘못 이해한 부분이 많았다. 다양한 접촉을 통해 내용을 설명드리고, 필요하다면 공개 토론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MB, 영향력 있는 평신도들 얘기듣고 격노
청와대가 천주교 설득에 이렇게 적극적인 것은 ‘행여 4대강 사업에 차질을 빚을까’ 염려해서다. 4대강 사업은 이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이다. ‘대운하’ 때부터 강력한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름을 ‘4대강 살리기’로 바꾸고 홍보비도 엄청나게 쏟아붓고, 일부 반대 여론은 무시하면서 결국 착공에 들어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주교의 ‘큰 어른’이라 할 주교회의가 ‘강력 반대’를 천명하면서 또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4대강 사업은 이제 한 고비 넘어간 거 아니냐는 인식이 널리 퍼졌는데, 왜 또 도로아미타불식으로 전개되는지 조짐이 좋지 않다”라는 한나라당 박희태 전 대표의 탄식(3월24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는 여권의 당혹감이 실려 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더 화가 난 건 천주교 측 반대의 심각성을 외부 인사들과 비공식 면담을 하면서 알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대통령이 왜 천주교 설득을 지시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평소에도 다양한 분들을 만나 여론을 듣고 있다. 영향력 있는 평신도들이 상당히 우려하는 걸 듣고 정부가 뭔가 ‘미스’하고 있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천주교 측이 올 초 4대강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못 간 게 첫 번째 실수였다. 3월8일 주교단 회의 때는 관료들이 대거 설명에 나섰지만 포인트를 잘못 잡았던 것 같다. 주교님들이 개별 사업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아니니까 결국 ‘감’과 ‘설득력’으로 판단하셨을 텐데, 반대파로 나온 김정욱 교수가 상당히 ‘선정적’으로 설명한 데 반해 우리 쪽은 부족함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설득’하면 ‘돌파’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주교회의가 한번 내린 결정을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봉은사 외압 논란 또한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명진 스님이나 봉은사 신도들이나 ‘진실 규명’을 외치며 점점 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이쯤 되면 (임기) 2개월 남은 안상수 원내대표가 조용히 물러나주는 게 옳지 않느냐”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방선거 60여 일을 남겨두고 여권이 종교의 덫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