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문화일보의 신정아 누드 사진 공개(위)는 선정적 보도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고민을 했고, 논란도 충분히 예상했다. 이 알몸 사진이 신씨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비를 한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고 보았다.”

신정아씨 누드 사진을 과감(?)하게 게재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문화일보 이용식 편집국장이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한겨레 등 다수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문화일보 기사에 이 누드 사진과 몸 로비의 연관성을 드러내주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이 사진의 출처가 어디인지조차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문화계 유력 인사의 집’에서 나왔다는 것이 문화일보의 ‘유일한 설명’이다. 그 문화계 유력 인사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이 사진이 이 유력 인사의 집에서 발견되었는지, 그래서 몸 로비가 있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미술계 한 인사의 말을 빌려 각계 고위 인사들에게 “신씨가 성 로비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물증”이라고 추정했다.

문화일보의 이 ‘누드 사진’ 보도는 즉각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단체나 시민단체는 물론 한국일보나 한겨레 같은 동업자들까지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선정적 보도’라고 개탄했다.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화일보의 이번 신정아 누드 보도는 사실 황색 저널리즘도 못된다는 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황색 저널리즘의 1차적 요건은 ‘분명한 폭로’이다. 영국의 대중지들이 싣는 사진과 기사에는 거침이 없다. 알몸이면 알몸 사진 그대로 내보낸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다가 찍힌 사진인지 명백하게 밝힌다. 누가 찍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황색 저널리즘일지언정 보도의 기본 요건은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문화일보 기사는 어떤가. 언제, 어디서 찍힌 사진인지조차 전혀 알 수 없다. 누가 찍었으며, 무엇을 하다가 찍은 사진인지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러고선 느닷없이 ‘성 로비’ 운운한다. 최소한의 기사 구성 요건도 갖추지 못한 ‘미달 기사’다.

모든 영상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고 왜곡시킬 수 있는 디지털 편집 시대에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정확한 현장 기록이 될 수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찍은 것인지가 특정되지 않은 사진은 현장 기록으로서 증거 능력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런 마당에 ‘알몸’으로 찍은 사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씨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비를 했다고 단정하는 상상력이야말로 정말 놀랍다.

문화일보 기자는 소설가인가

비단 신정아 누드 사진뿐만 아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드러내준 이메일 보도 또한 마찬가지다. 선정적인 것은 둘째치고 이 역시 보도의 기본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 이메일이 드러내주고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신씨와의 개인적 친분 관계를 완강하게 부인해왔던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거짓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들 이메일이 두 사람의 ‘불법 행위’를 입증해주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언론이 그것을 까발릴 이유가 없다. 한 네티즌의 지적처럼 검찰이나 언론이 주목할 것은 ‘로비 레터’이지 ‘러브 레터’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검찰이 얄궂게 흘려주는 ‘핑크빛 정보’에 휘둘려 별별 상상의 날개를 다 폈다.

이렇게 말하면 소설가들에 대한 모독이 될지 모르겠지만, 기자보다는 소설가가 되는 게 좋았을 기자들이 너무 많다. 문화일보는 편집국장부터 뒤늦게 소설가의 길로 나서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기자명 백병규 (미디어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