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을 위해 야외로 나선 지 5분여 만에 서상진 신부의 얼굴이 불에 달군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올겨울 4대강 현장을 찾아다니다 걸린 동상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는 지난 2월17일부터 경기도 팔당에서 매일 오후 3시 생명평화 미사를 이어오는가 하면 전국적인 서명 운동을 주도하며 4대강 반대 운동의 구심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지난 3월8일 전국의 사제 1100여 명이 참여한 ‘4대강 사업 반대 전국 사제 선언’을 발표했다.
사제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전하는 사람들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공동선을 위하고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사제들이 굳이 앞에 나설 일이 없다. 그렇지만 정부의 정책이나 행위가 올바르지 않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나설 수밖에 없다. 교구별로 주교회의 산하단체인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신부들과 수도회, 농민회, 환경단체들이 모이면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를 만들게 됐다. 주교단 성명(3월12일)이 있은 뒤 동참 의사를 밝힌 사제와 신도가 크게 늘고 있다.
 

ⓒ시사IN 백승기서상진 신부는 “현장에 가 보면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지난 용산 참사 때도 우려의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 현 정부 들어 유독 정부 정책과 마찰이 잦은 것 같다.정부 정책을 갖고 그러는 게 아니다. 용산과 4대강의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생명’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다 귀하다. 다른 생명체의 존엄함을 인정할 때 인간은 공생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자신의 존엄함 또한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용산이나 4대강은 일부의 재산 부풀리기를 위해 다른 생명체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사업이다. 인간과 대자연의 생명이 누군가의 탐욕에 의해 희생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제들이 나선 것이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주교단 성명을 언급하는 자리에서 “4대강 살리기에 대해 정치적 목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라고 했다던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주교님들과 신부들은 정치에 간섭하려는 게 아니라 정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생명 살리기라는 천주교의 정신과도 부합하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현장을 가보면 도저히 그런 얘기가 안 나온다. 보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인 영산강·낙동강 일대를 돌아봤는데 보의 규모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엄청났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봐도 보의 규모나 입지, 4대강에 들이는 예산 거개가 대운하 사업 때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 아닌가. 보 공사가 시작되기 전 경기도 여주 강변길을 신도들과 함께 걸은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그 길도 완전히 파괴돼 있더라. 아름답던 모래톱이 다 파헤쳐지고 쑥부쟁이도 사라지고. 안타깝다. 뭐가 생명을 살리는 길인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보면 알 수 있다.

청와대는 천주교의 비판을 ‘상당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앞으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의견을 구하겠다 했는데.
마침 다음 주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聖) 주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깊이 새기며 또한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도 당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하셨다. 우리도 용서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당장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중지하고 대화를 요청해온다면 용서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대화에 응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성실하게 대화를 할 거라면 먼저 4대강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학자·전문가들과 사전영향성 검토, 침수 피해·퇴적토 오염·수질 오염 검증 등을 제대로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공사를 계속하면서 대화를 한다는 건 자신들의 생각은 절대적으로 올바르며, 따라서 전혀 바꾸지 않겠다는 얘기이다. 그래서야 무슨 대화가 되겠나. 말만 대화지 실은 강요·강제·강압일 뿐이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지역 일꾼을 지지하겠다고 했는데.
그걸 갖고 선거법 위반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던데 우리는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리고 그 길로 나가려는 올바른 후보를 뽑자고 말하려는 것뿐이다. 이를테면 선거에 나올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발송한 다음 그 답변 내용을 신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4대강뿐 아니라 사형제·낙태에 대한 견해도 질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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