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위는 취업박람회장에서 젊은이들이 이력서를 쓰고 있는 모습.
지방대를 나와 서울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먼 친척 동생을 얼마 전까지 데리고 있었다. 공수특전단을 나올 만큼 건강하던 그는 지금 취업 스트레스 때문에 만성위염에 시달린다. 구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지방대 비인기 학과를 나온 그에게 돌아갈 일자리는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취업 준비를 하는 통에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방대에서 하는 연애는 ‘시한부’란다. 1~2학년 때는 모두 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 시험을 준비하기 때문에 한쪽의 합격과 동시에 ‘신분 격차’가 생겨 연애는 깨진단다. 편입에 실패한 고학년들은 취업이 된다면 ‘남극’으로도 가야 하기 때문에 연애가 시한부일 수밖에 없다.

몇 년 사이 동생은 세상에 주눅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중증장애인 도우미 등 온갖 일을 다 해보던 이 친구는 지금 토익 시험을 준비 중이다. 토익 시험을 왜 보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취업 준비라고 했다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자기도 세상이 인정하는 것 하나라도 잘해서 이 세상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싶어서란다. 

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같은 대학 친구는 부모님 신세를 지기 싫어 호스트 바를 나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친구가 잘생기고 신체도 건장해서 호스트 바에서 일할 만하다”라고 말하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호스트 바에서 일하는 것은 말려보지 그랬냐고 말했더니 “그럼 어떻게 해요, 먹고 살아야죠”라고 반문한다.

사실 호스트 바에서 일한다는 친구는 속칭 ‘날라리’하고는 담을 쌓은 친구이다. 마음 착하고 순해서 오히려 모범생에 가까운 아이다. 결국 동생의 친구는 돈을 벌어 공부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석 달 만에 호스트 바와 공부 모두 그만두고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

대선 후보는 일자리 만들 도깨비 방망이 있나

올해 초에 진행했던 연구에서 인터뷰를 했던 한 10대 후반 여성이 생각난다. 일찌감치 학교를 때려치우고 원조 교제 비슷한 성매매를 하는 아이다. 돈도 꽤 번다는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들이 못생긴 것들”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 못생긴 것들은 어디 가서 제대로 밥벌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발이 퉁퉁 붓도록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자기는 예뻐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방대를 나오거나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팔 만한 것이 몸밖에 없다는 현실. 여차하면 노동력을 파는 것과 몸을 파는 것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게 될 이 사회가 나는 경악스럽다. 보수 언론조차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공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청년 실업’이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되었지만, 정작 이들은 그 토론에서조차 밀려나 있다.

기업의 반대와 로비에 밀려 차별금지법에서 제외된 7개 항목 중 하나가 바로 ‘학력’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성 정체성 항목이 빠진 것에 가려 보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들은 시민으로서 향유해야 할 권리를 거의 누리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미아, 망명객이다. 사회에 아무런 소속감도 느끼지 못한 채 사회 밖에 내동댕이쳐질 그들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우리 ‘안’ 의 ‘이웃’이다.

도깨비 방망이를 가진 것처럼 일자리 100만 개, 500만 개를 외치는 저 대선 주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기자명 엄기호(‘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동아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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