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동(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일본 평화헌법은 전쟁을 ‘부정’하는 평화, 한반도 종전선언은 전쟁을 ‘방지’하는 평화다. 이제 이 두 가지 평화를 바탕으로, 사회 내부의 구조적 폭력이 부재하는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2007년 11월17일 서울에서는, ‘일본 평화헌법 9조를 함께 지키고, 한반도에 평화헌법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내건 ‘평화헌법 시민연대(한국 9조의 회)’라는 단체의 결성식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의 평화 운동가들과 아울러 일본인 활동가 40여 명이 참가해 한·일 간 연대를 과시했다. 여기에서 평화헌법 시민연대가 지키고자 하는 평화는, 주권국가의 ‘전쟁을 부정’하는 평화이다.

잘 알다시피 1946년 맥아더의 점령 아래 제정된 일본 헌법은, 9조에서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交戰權)을 부인하며 궁극적으로 전쟁을 방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평화헌법이다. 일본 평화헌법의 제정에는 일본을 침략 국가로 만들지 않으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받은 동아시아인의 평화를 위한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하다.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 이어진 국제 평화운동, 곧 전쟁 불법화 운동이 부전조약(不戰條約)의 체결로 결실을 맺었지만, 파멸적인 세계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정된 일본의 평화헌법은 18세기 말 칸트의 ‘영구평화론’ 이후 평화를 향한 인류의 오래된 소망을 담은 일종의 권리장전이기도 하다.

2007년 10월4일 평양에서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여기에서는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이끌어내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을 합의했다. 여기 또 다른 의미의 ‘평화’가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통해 만들어내려는 평화는 분단 국가 사이의 ‘전쟁을 방지’하는 평화이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강화(평화) 조약이 아니라 휴전조약이라는 비정상적 방식으로 종결되었다. 따라서 남북한 간에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휴전 상황을 종식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은 분단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러나 이 길은 아직 평탄하지 않다. 종전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핵 시설의 불능화와 핵무기 폐기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더욱이 남북한 간에 영구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불가침 선언으로 군사 신뢰를 구축하고 군비를 축소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난나 그림
대안적 가치 등 정책 논의 실종된 대선전 아쉬워

 첫 번째 평화, 곧 전쟁을 ‘부정’하는 적극적 평화를 옹호함으로써, 두 번째 평화, 곧 전쟁을 ‘방지’하는 소극적 평화를 더욱 안정되게 만들어갈 수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 수호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두 가지 사태가 만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이제 인류는 전쟁 방지와 전쟁 부정이라는 두 가지 평화를 바탕으로 더욱 적극적인 세 번째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최대치의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모든 구조적 폭력이 부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구조적 폭력이 부재하는 평화란,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 방법에 의해 추구해야 할 적극적이고 대안적 가치이다. 이런 점에서 정책 경쟁이 실종된 대통령 선거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은 더욱 절실하다. 그럴수록 일본 평화헌법 수호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통해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적극 키워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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