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분들도 환영한다. 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삭제하거나 테러하는 일 없을 테니 놀러오라”
늦깎이 유학생 오제욱씨(39)가 크게 말했다. 국제전화의 낮은 감 때문인지 좀 크게 말해 달라는 그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재독한인아고라’라는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독일에 사는 한국인들의 모임이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교민과 유학생들이 뜻을 모아 한 달 전 문을 열었다. 그는 “다들 바쁜데 제가 방학이라 그나마 여유가 있어서 운영자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오씨가 카페 운영자가 되자, 오씨 이모는 펄쩍 뛰었다. 그의 이모는 1970년대 간호사로 독일에 와 정착했다. 오씨는 “그냥 간단한 커뮤니티인데도 이모는 예민하더라. 독일 교민사회는 박정희 정권 때 간호사, 광부 일을 하러 건너온 분들이 많아 보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유학생들도 예술 분야 전공자가 많아서 정치 사회적인 사안에 관심이 낮다. 게다가 국내문제에는 더욱 둔감하다.

ⓒ뉴시스4대강 사업을 자신의 소신이라고 직접 밝힌 이명박 대통령
그래도 대운하 공약이 나왔을 때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공약을 내걸며 독일의 라인강을 모델로 선전했기 때문이다.

카페를 만들면서 임혜지 재독건축가의 영향이 컸다. 토목, 건축 관련 전문가인 임씨는 여러 취약점을 가진 라인강을 모델로 하는 정부 사업에 문제를 제기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관련 글을 꾸준히 올렸다. 4대강 국민소송모금을 독일에서 펴기도 했다. 다른 교민들과 유학생들도 하나둘 관심을 가지게 됐고 뜻을 모아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내 보기로 했다. “대운하 공약을 철회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있다가 이름만 다른 4대강 사업 사업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2월13일 문을 연 카페회원은 60여 명이다.

요즘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들끼리는 모일 때마다 창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독일 사람한테 4대강 사업
얘기를 하면 하도 어이없어 하니까 말하기도 창피하다. 실패한 정책을 교훈삼아 사업을 벌이고 있으니 이해를 못한다. 코웃음 치다가도 흥분해서 화를 내기까지 한다. 왜 그런 일을 벌이느냐고.” 오씨에 따르면 독일 사람들에게 라인강 사업은 실패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오씨는 4대강 사업은 실패한 라인강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씨는 “라인강에 배를 띄우며 구불구불한 강 길은 배가 다니기 불편해 일직선을 만들었다. 그러자 홍수를 막지 못했다. 결국 재자연화 공사를 하면서 보수했다”라고 말했다.

오씨의 전공은 종교사회학이다. 증권사에서 전산 업무를 10여년 하다가 마흔을 앞두고 훌쩍 유학을 떠나 석사 과정을 밟게 됐다. 하이델베르크 인근에 자리 잡은 지 2년. 오씨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일이 전공과도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공부 시간을 많이 뺐기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런 활동도 공부의 일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독일 유학생 오제욱씨가 운영하는 〈재독한인아고라 카페〉
독일 전역에 흩어져 사는 회원들은 중간 지점인 프랑크푸르트에서 모인다. 3월 초에는 ‘4대강 정비 사업과 해외동포’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국내에서 방송된 시사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4대강 사업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막연히 경제 살리기 효과를 생각하며 4대강 사업에 찬성하던 사람들도 그 자리에서 마음을 바꿨다. 반대쪽 논리를 담은 프로그램은 논리가 탄탄한데 찬성 쪽 근거는 홍보용 프로그램이 전부다. 누가 보더라도 문제가 많은 사업이다.”

오씨를 비롯한 카페 회원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독일의 녹색당과 영향력 있는 시민 단체들에 독일어로 한국의 4대강 사업을 알리고 성명서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환경은 한 국가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다. 시민 단체들이 이 사업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국제사회의 공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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