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사건으로 재개발 지역이 흉악범 소굴로 도매급 취급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재개발 동네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토건족 배만 불리는 개발이 아닌, 진정 사람을 위한 개발을 꿈꾸는 달동네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울의 대표적인 재개발 동네인 서울 성북구 삼선4구역 장수마을 사람들. 그런데 사람 중심의 대안 개발이 늦춰지면서 빈집이 흉물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흉물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들도 생겼다. 한국판 스쾃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쾃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공공 영역을 확대해 나가려는 하나의 문화 운동이다. 스쾃 운동으로 사람중심의 대안개발을 바라는 장수 마을 사람들의 꿈은 이뤄질까?


글 싣는 순서

1)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2)빈집을 스쾃하라!

ⓒ시사IN 안희태
콘크리트 아파트 시대에 보기 힘든 장돗대. 된장처럼 구수한 사람냄새가 풍기는 곳이 바로 장수마을이다.

6년째 진척 없는 재개발, 자꾸만 낙후되는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골목 마다 드문드문 생기는 주인 없는 빈집은 마을 사람들에게 무언의 ‘협박’처럼 다가왔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빈집과 함께 살아간다. 성곽 주변으로 드나드는 외지인들이 많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민들이 나서서 화분을 가져다 놓기도 하고, 빈집의 입구를 막아 놓기도 했다. 그러나 빈집은 빈집,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빈집은 동네의 흉물스러운 존재였다.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 피의자가 빈집을 떠돌며 은신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개발 지역의 빈집은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경찰청은 대도시 대규모 재개발 지역으로 이주 세대가 3분의 1 이상이거나 재개발 공사가 중단된 뒤 장기간 방치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폐쇄회로 TV 설치 등 방범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을 체념하며 산다.

‘제멋대로’ 지어진 마을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평지에 익숙한 두 다리가 경사진 길과 꼬불꼬불 이어진 계단을 딛고 움직이는 동안 제멋대로 떨려왔다. 실핏줄처럼 가느다랗게 이어진 골목 마다 가난의 풍경은 속살을 드러내곤 했다. 가쁜 숨을 고르며 서울성곽 아래로 얽혀 있는 작은 집들을 찬찬히 내려다보니 제각각, 하나도 꼭 같은 모양이 없는 ‘제멋대로’였다. 일제 때부터 판잣집이 들어서기 시작해 한국전쟁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마을, 사람들은 빈터만 생기면 집을 지었다. 장수마을은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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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가 지고. 달동네지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장수마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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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곳을 길 고양이가 차지했다

장수마을은 2004년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계획에 따라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장수마을에는 모두 150채, 320세대가 오밀조밀 모여 산다. 한 집을 방 9개로 나누어 세를 주기도 해 세대수가 많은 편이다. 이 중 노인가구가 55%, 평균 25년 가까이 살아왔고 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가구가 40%에 달한다(삼선4구역 주민참여형 대안개발계획 1차 보고서).
집집마다 요즘 쉽게 보기 힘든 LPG 가스통이 눈에 띄었다.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겨울이면 난방비가 제일 큰 근심거리다. 합수관으로 되어 있어 정화장치를 거치지 않는 하수도는 계절을 불문하고 악취를 풍겼다. 가파르고 좁은 길은 겨울이면 마을을 마비 상태로 만든다. 김순자 할머니(76)는 “겨울엔 꼼짝없이 갇혀 지내지”라고 말했다. 예고 없는 봄눈이 소복이 내려 한 걸음 떼기조차 힘들던 지난 3월22일 장수마을에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시가스만 들어와도 살 만하겠다”라고 말하는 김순자 할머니 집의 문제는 도시가스 뿐 만이 아니었다. 건드리면 무너질 듯 곳곳에 금 간 화장실 벽과 보일러실은 물론, 눈비가 오는 날씨면 휘청휘청 바스라질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은 손쓰기 조차 힘든 상황이다. 김 할머니 집만이 아니라 허름한 마을 곳곳은 위험요소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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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에는 노인가구가 55%, 평균 25년 가까이 살아왔고 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가구가 40%에 달한다

어느 지역보다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지역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건설사는 손을 놨다. 사적10호인 서울성곽이 지나가고 시유형문화제인 3군부 총무당(조선시대 육군본부 같은 곳)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은 건축에 여러 제약이 많다. 또 높이 지어봐야 7층 건물만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돈을 벌려는 건설회사로서는 개발이익을 누릴 수 없다. 결국 건설회사는 주판알을 튕겨보고 모두 손을 뗐다.

건축가 김미정씨는 “도시개발이 실제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에 시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건설사도 구청도 손을 놨다. 현재 재개발 사업이 건설사의 수익사업으로 변질됐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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