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기자로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과 관련한 기사를 써 보라”는 데스크 지시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미 인터넷 신문 등에 발언 내용이 다 나왔는데 더 쓸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요. 며칠이 지나도 최위원장의 발언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불쾌하고 찜찜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왜 이럴까, 고민하다 저는 이것이 제가 받은 모멸감과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웬 모멸감이나고요? 글쎄요. 저도 헐크러진 제 머릿속을 정리해 볼 겸 이번 일을 순서대로 한번 짚어보려 합니다.

3월18일 주간지 마감을 마치고 한국기자협회 산하 여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저출산 극복과 언론의 역할’ 세미나 장소인 제주 서귀포 KAL 호텔에 오후 5시경 뒤늦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저는 이곳에 최시중 위원장이 와 있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호텔 입구에 정장 입은 사내 십여 명이 서성대는 것을 보면서도 ‘전재희 장관이 저 정도 의전을 받는 위치였나’ 갸웃하는 수준이었지요(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이 날 여기자협회 세미나 초청 연사였습니다). 세미나장에 도착하니 이미 전재희 장관은 발제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 참이었습니다.

김은남 시사IN 사회팀장
그런데 뒤이어 사회자가 뜻밖의 진행 발언을 했습니다. 같은 호텔 바로 옆 장소에서 신문방송편집인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는데, 거기 참석한 최시중 위원장이 여기자들에게 잠깐 인사를 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제서야 호텔 입구 ‘정장맨’들에 대한 의문이 풀리더군요. 세미나에 모인 여기자 150여 명은 기대감에 약간 들뜬 분위기였습니다. ‘대통령의 멘토’이자 미뤄지는 종편 사업자 선정 문제 등으로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근접거리에서 만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그렇지만 최위원장이 들어서고 나름 화기애애했던 장내 분위기가 싸늘하게 돌아서는 데는 채 3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최위원장은 “이렇게 지성적이고 아리따운 여성들 앞에 서 영광”이라며 “나이 차는 좀 많이 나지만 언론계 선배로 생각해 달라”라고 말문을 열었지요. 그러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랫사람이 써준) 축사가 있지만 이것 말고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겠다”며, 문제의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럭키세븐의 유래를 아는가. 최소한 애 둘은 낳아야 인간을 만든 조물주의 뜻에 합치한다. 여기자들도 최소한도 애 둘은 꼭 낳아달라. 시집 안간 분은 빨리 시집가고, 그래서 애 둘은 꼭 낳고, 여력이 되는 분들은 셋넷 낳고…. 그래야 가정도 행복하고, 국가적인 저출산 문제도 극복할 수 있고, 우리가 걱정하는 경쟁력을 갖추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나 보고 보수꼴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보다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데 딸 둘을 모두 가정대에 보냈다. 그리고 재학 시절부터 졸업하면 일 년 안에 시집가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내 뜻을 잘 들어주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이듬해 시집을 보냈다. 아이도 둘씩 낳았다.”

'현모양처' 발언을 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사실 최위원장이 발언하는 동안 테이블 여기저기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너무 어이가 없으면 화가 나기보다 웃음이 난다는 것을요. 그런데 최위원장께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오히려 ‘필’을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5분 정도 ‘간신히’ 시간을 내 인사를 하시겠다던 분이 질의응답 포함 20분 넘게 발언을 이어갔으니까요.

마지막에 3~4년차쯤 돼 보이는 젊은 여기자 하나가 질문을 했지요. “위원장님께서는 현모양처를 바란다고 하셨는데, 딸들은 그렇다치고 손녀들도 그런 인생을 살기 원하시느냐?”고요. 저는 그때라도 최위원장이 질문에 담긴 조소를 알아채 주기 바랐습니다. 그런데 위원장께서는 오히려 한 술 더 뜬 답변을 하시더군요.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에서 여성의 임무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 본다. 그래서 가능하면 현모양처가 되길 바란다”라고요. “충실한 어머니, 선량한 부인이 되는 것 쉽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이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것이다. 여력이 닿으면 일을 하면 좋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과거부터 갖고 있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보수임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최위원장의 발언을 듣는 동안 제 머릿속으로는 온갖 기억이 스쳐갔습니다. 특히 첫아이를 낳은 직후가 생각나더군요. 그때 출산 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지 석 달만에 몸에 이상징후를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미치겠더군요. ‘혹시 또 임신을 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3초만에 잠이 들곤 하는 제가 그때는 불면으로 며칠 밤을 새웠습니다. 그 상황에서 연년생 아이가 생긴다면 그건 단순히 커리어의 ‘중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기자직을 접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때 일은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미세하게 동요합니다. 그 뒤로도 제가 둘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친정엄마가 함께 살게 된 덕분이었습니다. 만약 남편과 단 둘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처지였다면 저는 절대로 아이 둘을 낳고 키울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기자직이 특수한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제 주변 친구들을 봐도 애 둘 낳고 일을 계속하는 건 시댁 또는 친정 도움을 받을 수 있거나, 천신만고 끝에 믿을 만한 입주 도우미를 구한 경우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일을 하느냐고요? 충실한 어머니, 선량한 부인으로 사회에 기여하면 됐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정말이지 〈개그 콘서트〉의 ‘행복 전도사’가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지요. “여러분, 힘들면 그냥 집에서 애 키우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괜히 바깥일 하면서 불평하고 국가 욕하고 그래요? 꼭 돈 없어서, 팔자 세서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처럼요. 다들 집에 애 봐주는 보모 셋 정도는 있잖아요. 직장은 시집가기 전까지 잠깐 액세서리삼아 다녀보는 거잖아요. 남편이, 남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아야 현모양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안그래요, 여러분?”

이 날 최위원장이 자신의 발언 무게를 어떻게 가늠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발언이 기사화되고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질 줄을 예측했는지 또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예측을 했으면 한 대로, 하지 못했다면 못한대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최위원장은 이 날 문제의 현모양처 발언을 꺼내기 전에 “이렇게 말하면 나를 보수 꼴통이라 할지도 모르지만”이라고 전제했습니다. 본인의 발언이 시대착오적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럼에도 최 위원장은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냈습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8월 김우룡 한양대 석좌교수(왼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김 이사장은 최근 '큰집 쪼인트' 발언으로 이사장 직에서 물러났다. 최 위원장도 '현모양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럴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로 가정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발언이 기사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생겨날 수 있었던 걸까요? 까마득한 후배 여기자들이라고는 해도 어쨌거나 언론계 선후배 관계니까? 아니면, 현 정부 들어 ‘언론 프렌들리’가 워낙 잘 구축되고 있으니까? 그도 아니면 종편 사업자 선정, 월드컵 방송 중계권 조정, 수신료 인상 따위 언론사에 온갖 당근과 채찍을 휘두를 수 있는 자신의 심기를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에서?

정반대의 경우도 가정해 볼 수 있겠지요. 설사 보도가 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상황 말입니다. 이 경우도 배경을 여러 가지로 유추할 수 있겠지요. 보수 중 누군가는 돌을 좀 맞더라도 할 말은 제대로 해 젊은 여성들을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거나, ‘바깥일에 눈이 팔려 가정을 돌보지 않는’ 여성들을 따끔하게 꾸짖어야 한다거나, 그럼으로써 작금의 ‘국가적 위기 상황’을 탈출해야 한다거나…. 최위원장이 평소 이런 소신을 가졌던 바 마침 기회가 온 김에 이를 피력해 본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최위원장이 평범한 일개 촌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발언을 한 장소가 동네 양로당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저는 최위원장이 기사화를 예측했으면 한 대로, 못했으면 못한 대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후자라면 최위원장은 오만한 겁니다. 언론이 모두 내 손아귀에 있다고 믿기에 기자 150여 명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 테니까요(여기서 굳이 ‘여기자’라는 표현을 쓸 필요는 없겠지요. 물론 ‘남기자’ 앞에서도 최위원장이 이렇게 말씀하셨을지는 의문입니다).

반대로 만약 기사화를 예측한 거였다면 최위원장은 공감 능력이 심하게 부족한 겁니다.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는 젊은 세대를, 아이 낳고 싶어도 못낳는 여성들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이라면 저런 무신경한 말로 이들을 상처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최위원장의 속내가 어느 쪽이든 저는 두 번의 모멸감을 느낍니다. 한 번은 기자로서, 한 번은 일하는 여성으로서.

이런 모멸감을 느낀 것이 저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더군요. 여기자협회도 최위원장의 문제 발언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유감을 표시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이를 위한 연대 서명이 필요하다면 저도 기꺼이 동참할 생각입니다. 최위원장의 책임있는 답변을 기대합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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