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정활동의 중심축은 상임위원회다. 상임위원회는 법안을 기안하고 수정해 본회의에 법률안으로 제출하는 기능을 맡는다. 각 상임위원회는 행정부에 대한 감독과 감시 기능을 한다. 의회의 행정부 감독은 예산·인사·감사·조사 등 여러 방면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상임위원장은 정부 해당 부처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상임위원회 비중은 상원보다 하원이 더 높다. 하원은 한 상임위당 의원 수가 많고 규모가 크다 보니 좀 더 세분해 소위원회(소위)를 두고 소위원장 중심으로 상임위 활동을 운영한다. 따라서 의원들은 일단 상임위든 소위든 위원장을 맡는 게 목표가 된다.

위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위원장을 거치지 않는 법안도, 위원장을 건너뛰는 결의안도 없다. 의장이 원해도 상임위원장이 처리하지 않으면 법안이 본회의로 올라갈 수 없다. 필자가 관여한 2007년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하원 상정 당시, 낸시 펠로시 의장이 외교위원장이던 톰 랜토스의 상임위 처리를 속으로만 애태우면서 마냥 기다렸다.

한국도 비슷하겠지만, 의원들이 가고 싶어하는 ‘알짜’ 위원회는 재정 관련 위원회다. 여기서 조세·무역·재정 정책을 다루기 때문이다. 상원 재정위원회와 세출위원회, 하원 세입위원회 3곳이 알짜이다.
상·하원 통틀어 가장 힘이 센 위원회는 세출위원회다. 세출위원회는 국가 예산 배정권을 행사하는 곳이다. 야심 있는 의원이라면 하원에서는 세입위원회, 상원에서는 세출위원회에 소속되기를 바란다. 지역구에 유리한 사업을 유치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양대 위원회에 소속된 의원들이 의회 내 실세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 정부, 레빈 위원장 잘 몰라 당황

지난해 3월3일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앞)이 하원 세입위원회에 출석해 자료를 보고 있다.

하원 세입위원회는 한·미 FTA 의회 비준의 열쇠를 쥐고 있다. 한국에게 중요한 곳이다. 하원 세입위원장은 얼마 전까지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40년 의정 경력자인 찰스 랭글 의원이 맡아왔다. 그런데 그가 의회 내 윤리위원회에 제소되는 바람에 지난 3월 초 미시간 주 출신 14선 의원 샌더 레빈이 자리를 이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찰스 랭글 의원에게 정성을 다해왔는데 갑자기 위원장이 바뀌어서 당황하고 있다.

미국에서 의회 비준이 없는 무역정책은 없다. 노무현 정부 때 정부 간의 FTA를 체결했다고 자랑하고 칭찬하고 포상도 했지만 의회 비준 여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의 역학 구도에 너무 무지했다.

샌더 레빈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
FTA 반대를 내세워 당선한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FTA 통과를 바라는 한국 정부의 고민은 커졌다. 그제야 한국 정부는 해당 상임위인 하원 세입위원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위원장인 찰스 랭글이 목표가 되었다. 40년간 하원 의원을 지낸 찰스 랭글은 그동안 많은 구설에 오르내렸다. 한국전쟁 경험을 입에 달고 다니는 찰리(동료 의원들은 그를 찰리라고 부른다)는 지금도 가장 가까운 한국인을 물으면 ‘박동선’을 이야기할 정도이다. 그는 1970년대 터진 박동선 사건으로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이권이 몰려 있는 세입위원장에게는 늘 윤리위원회의 감시가 따라다녔다. 찰스 랭글은 세금 포탈, 기업으로부터 여행경비 수수, 맨해튼 내 다주택 소유 등으로 의회 내 윤리위원회에서 규정을 어겼다는 판결을 받아 스스로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사임이 발표되자마자, 한국 언론은 세입위원회 내 서열 2위인 캘리포니아 출신 19선 의원 퍼트니 스타크가 후임이 되리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당시 이미 의회에서는 미시간의 샌더 레빈이 후임으로 알려져 있었다. 퍼트니 스타크는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건강보험 개혁안 문제를 전담하고 있어서 위원장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 언론들도 오보를 냈다. 서열 순위만 보고 실제 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구설에 오르내리던 찰스 랭글의 낙마를 예상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는 FTA 비준을 위해 신임 세입위원장인 샌더 레빈을 다시 연구해야 할 상황이 됐다. 샌더 레빈은 자동차공업 지역인 미시간 주 출신답게 자동차공업 노동자를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한·미 FTA에서 특히 자동차 부문을 놓고 반대 목소리를 가장 높였던 인물이다. 한국으로서는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은 정치인이다. 필자는 2007년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때 그를 만날 방도가 없어서 그의 사무실 앞에 대기하다가 달려들어서 동의를 받아낸 적이 있다. 상원의 거물 칼 레빈 군사위원장이 그의 세 살 아래 동생이다.

에니 팔레오마베가 하원 아태환경소위원장.
팔레오마베가, 북한 관련 문제 도맡아

한·미 FTA가 세입위원회 몫이라면 대북 문제는 외교위원회 담당이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안팎의 촉각이 곤두섰다. 특히 북한 핵에 대한 새 정부의 시각이 관심을 모았다. 국무부 관계자의 모호한 발언이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라는 내용으로 한국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의 입장을 비교적 정확하게 전망할 수 있는 길은 하원 외교위원장을 만나는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을 논의하는 핵심 3인방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국무장관·하원외교위원장이다. 필자는 하워드 버먼 외교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북한 핵에 관한 질문을 하던 옆 기자에게 “내가 모르는 대외정책이 있는가?”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2006년 외교위원장은 의회 내 홀로코스터의 유일한 생존자인 톰 랜토스였다. 그는 의회 내에서 인권 수호자로 인정받지만 이스라엘에 편향되어 있다는 말을 듣는 전형적인 유대인 중심주의자였다. 2008년 2월 랜토스 위원장이 사망했다. 그 자리를 이은 사람이 외교위원회 서열 2위인 하워드 버먼이었다.

하워드 버먼은 워싱턴 정가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오래전부터 법사위원장직을 목표로 했다. 지역구에 남미계 이민자가 많아 법사위원장이 되어서 이민 법안을 개혁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랜토스 위원장은 죽음이 임박하기 전 서열 2위인 하워드 버먼을 불러 유언을 했다. 게리 애커먼은 너무 진보주의자·평화주의자여서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수 있다며, 하워드 버먼에게 외교위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래서 하워드 버먼이 법사위로 가지 않고 외교위에 남았다. 아무튼 버먼은 연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차기 외교위원장은 서열 3위인 뉴욕 출신 게리 애커먼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외교위에서 주목할 인물은 버먼 외에 또 있다.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인 에니 팔레오마베가다. 그동안 외교위에서는 북한 문제와 아시아 문제를 위원장이 직접 챙겼는데 버먼은 위원장이 중동·유럽·아프리카 문제에 진력하고 북한 관련 문제는 전적으로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 에니 팔레오마베가에게 맡기고 있다.

2009년 여름 필자는 팔레오마베가 아태소위원장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상원 외교위 전문위원이 북한 관련 청문회 협의를 위해 소위원장을 만나러 서울까지 직접 찾아왔다. 그만큼 에니 팔레오마베가는 미국의 대북한 외교의 핵심 인물이다. 더구나 그는 2008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내 슈퍼 대의원(의원·주지사 등 유력 대의원) 중에 가장 먼저 오바마 지지를 공개 선언한 의원이다.

알아야 전망할 수 있고 내부까지 들여다봐야 정확하게 앞을 내다볼 수 있다. 변화하는 미국 의회의 흐름에 가장 먼저 편승하려고 아시아 국가들이 워싱턴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행정부 못지않게 의회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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