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성신여대 교수·언론인)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판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 공개보다는 정보 통제에 의한 폐해가 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실증적 연구가 많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50년도 넘어 케케묵은 ‘언론의 4이론’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사회체제와 언론을 연관시켜서 권위주의 이론, 자유주의 이론, 공산주의 이론, 사회책임 이론으로 나눈 것인데 우리는 꽤 오랜 기간 권위주의 체제, 즉 국가가 개인 위에 군림하는 구조 속에서 언론의 기능을 경험한 바 있다. 이 구조 속에서 언론은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통제를 받는 데 대한 반대 급부로 각종 특혜를 누린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정책에 의해 언론이 길들여지고 정보는 통제된다. 일찍이 마키아벨리·홉스·헤겔 등이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정보 통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이 이론의 토대를 제공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것이니 더 길게 말을 늘일 필요도 없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자유주의 이론으로 유럽에서 태동한 후 주로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 권위주의를 지원하는 이론가들이 인간의 본성에 비관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존 밀턴 같은 사상가들은 “인간은 이성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이런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상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유롭고 공개된 회의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돼야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 택하는 까닭

존 밀턴보다 조금 뒤늦게 같은 17세기를 살았던 존 로크는 언론의 천부적 자유권을 주장함으로써 미국 헌법에 절대 영향을 끼쳤는데, 그 유명한 1791년의 미국 수정헌법 1조는 ‘미국 의회는 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하지 못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로부터 9년 뒤 미국 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의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라는 명언은 이를테면 자유언론 철학에 대한 기념비적 헌사다.

그리고 훗날 언론 자유의 역할을 좀더 도드라지게 구체적으로 풀어낸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이다. 그는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나머지 한 사람의 의견을 침묵하게 한다면 이것은 권력을 소유한 한 사람이 나머지 전체를 침묵시키는 것에 비하여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사람들은 오류를 진실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만일 그 의견이 틀린 것이라면, 그들은 오류와 대비됨으로써 발생하는 진실에 대한 더욱 명확한 인식과 생생한 인상과 같은 커다란 혜택을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자유주의 체제 속의 언론이라 해서 늘 무제한의 자유를 누려온 것은 아니다. 저널리즘에서 가장 자주 내세우고 있는 미국 수정헌법 1조도 수많은 판례에서 보듯 그 해석이 다양하다. 수정헌법 1조를 해석할 때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절대주의적 관점에서부터, 입법부가 필요할 경우 언론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상대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격렬한 법적 논쟁이 이어져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수정헌법 1조는 ‘가장 극단적인 가설’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미디어가 주장하는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 등은 그 미디어가 속한 시장 경쟁 체제의 소산일 수도 있다. 즉, 자사의 이익을 위해 ‘자유’와 ‘알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장에 상당 부분 희생이 따른 경우도 많다면, 꼭 색안경을 쓰고만 볼 일도 아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판례가 많다는 것도 그만큼 언론 자유를 위한 갈등이 많았다는 것이고, 이건 다시 말해 정보 공개보다는 정보 통제에 의한 폐해가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증적 연구가 축적돼왔다는 것이 아닐까?

언론과의 대립 끝에 결국은 정보 통제 쪽을 택한 노무현 정부의 다음 정부가 어느 쪽을 택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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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언론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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