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공권력이 투입될 때보다 감옥에 갈 때보다 더 힘들 때가 십년이고 백년이고 함께 하리라 믿던 사람이 떠날 때다.
비 내리는 토요일 이른 아침 시간.

우리 사무실과 맞붙어 있는 금속노조 사무실 문을 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참상이다. 사무실 바닥에 네 덩어리의 검은 물체가 뒹군다. 문 앞의 비교적 작은 덩어리는 홍순호 부지부장. 그보다 약간 큰 덩어리는 차해도 지부장. 짧지만 넓은 덩어리는 정홍형 사무국장. 그리고 가장 큰 덩어리는 김인수 한진 전 사무장. 휴대용 가스레인지 앞에 골룸처럼 앉아 있는 박종석 부지부장이 오늘 아침 식사 당번인 모양이다. 차 지부장과 정 국장은 체포영장이 떨어진 수배자이고, 나머지 셋은 그들을 지키는 이른바 ‘사수대 택’이다.

조직부장 책상으로 살며시 가는데 이번엔 발치마저 심란하다. 거침없이 진군했으면 밟을 뻔한 물체가 한 덩어리 더 있다. 침낭을 머리까지 덮어써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저만한 공간에 구겨넣을 수 있는 부피는 혜금이밖에 없다. 밟으면 아삭 소리가 날 것 같은, 작고 구부러진 새우깡 같은 물체를 내려다보다 하마터면 서러워질 뻔했다. 아이가 둘 딸린 에미가, 지난해 투쟁 과정에서 골반뼈가 부서져 몇 번의 수술 끝에 철심을 박아넣은 몸을 지닌 저것도 사수대다.

그런 자리에 없을 리가 없는 장현이 형이 없다. 왜냐하면 형은 진작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난 장현이 형이 왜 쓰러졌는지 의사보다 더 잘 안다. 제 몸을 자본가가 노동자 부려먹듯 착취한 탓이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건 혜금이도, 정홍형도 쓰러질 거라는 사실이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자는 날보다 날밤 새는 날이 더 많고, 그 나이에도 집회 신고에서부터 행진 코스 짜는 일까지 전천후 다기능의 소유자가 장현이형이다.

이 형도 명색은 386이다. 그것도 노무현을 저 자리까지 올려놓았다는 전설적인 부림사건의 주인공이다. 노무현 저렇게 되고 나서 부산 지역은 한동안 분위기가 묘했다. 민주노동당을 찍었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까지 왠지 들떠 보이던 야릇하고 수상한.

왜 안 그렇겠는가. 송년회 자리나 집회에서 아니면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서 동네 강아지처럼 흔전만전 마주치던 사람들이, 타도 대상이어야 마땅했던 대통령이 되고 비서실장이 되고 무슨 무슨 비서관으로 텔레비전에 나오고 신문에 등장하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청와대로, 무슨 위원회로, 어떤 공사로 갔다는 소문들이 들리면서 나도 자꾸 전화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화장실 간 사이에 부재중 전화가 오면 궁금해서 못 견디는 증상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386에, 게다가 부산대 출신에 부림이기까지 한, 오늘날 민주화 세력의 성골 계급인 장현이 형한테 넌지시 물어보았다.

“전화 왔대요?”

“오면 뭐 하고 안 오면 뭐 할끼고.”

그때 사실은 쪽팔려 죽을 뻔했다. 이제야 말하건대 나는, 공권력이 투입될 때보다 감옥에 갈 때보다 더 힘들 때가 사람이 떠날 때다. 십 년이고 백년이고 함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들이 떠날 때. 그럴 때 세상은 별안간 넓어진다. 그들을 미워하는 게 그 막막한 공백들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냥 떠나는 것도 용서가 안 되는데 아예 사라지는 사람들마저 있다. 몇 번이나 겪었는데도 그 공백을 메울 방법이 하도 마땅치 않아 나는 심지어 노동운동 그만하고 시민단체 일을 해볼까 심각하게 고려한 적도 있었다. 거긴 최소한 열사는 없는 데니까. 이렇게까지 처절하지는 않을 테니까.

난 우리가 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제 몸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사수대 혜금이의 쇳소리 나는 기침 소리를 들으며 사무실을 나서는 밤. 그런 가당찮은 꿈을 꾸어본다. 

기자명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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