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실로 보기 드문 일이다. 검찰이 김경준씨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검찰 규탄 대회에서 장관을 지낸 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검찰이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했다고 맹비난했다. 그 자리에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있었다. 이해찬·한명숙 등 총리를 지낸 분도 두 명이나 있었다. 도지사를 지낸 손학규씨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현 정부에서 국가 요직을 거친 이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그들은 입을 모아 국가 공권력인 검찰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고 공언했다. 어디 그뿐인가. 역시 총리를 지낸 이회창 후보도, 장관과 도지사를 지낸 이인제 후보도 검찰 수사 결과를 부정했다. 이들은 마치 군사독재 시절 민주 인사들이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듯이 검찰을 불신했다. 단순하게 집권욕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미진하다.

최인철 교수가 쓴 〈프레임〉이란 책을 보면 심리학 실험 중에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게 있다. 예를 들면 실험 대상을 제안자와 결정자로 나누고, 제안자에게 1000원을 준다. 제안자에게는 돈을 분배할 권한을 주고, 결정자에게는 거부권을 준다. 결정자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둘 다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제안자가 어떤 분배를 해야 결정자가 거래에 응하는지 관찰하는 게임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어떤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따라 제안자의 분배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실험에 사용하는 필기구나 설문지, 그리고 인테리어 등을 비즈니스 분위기가 물씬 나도록 배치하면 제안자의 분배 방식은 현저하게 야박해진다고 한다. 이를테면 보통 환경에서는 대개 결정자에게 500원 정도를 공평하게 제시하는데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100원만 받으라고 배짱을 부리는 식이다. 비즈니스를 상징하는 물건과 접촉하기만 해도 인간의 이기심이 맹렬히 고개를 드는 것이다.

최근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검찰이 오랫동안 삼성의 비즈니스에 노출돼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이 뇌물로 검찰의 주요 인사들을 관리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이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이미 인터넷 공간에서는 네티즌이 검찰을 ‘떡찰’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상이 돼버린 지경이다.

광화문 검찰 규탄 대회는 국가 요직을 거친 이들의 검찰에 대한 ‘프레임(생각의 틀)’도 일반 네티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평무사해야 마땅할 검찰이 철저히 조직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리라고 믿는 것이다. 이는 한국 검찰이 정말로 이명박 후보를 무서워했을지도 모른다는 것보다도 무서운 일이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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