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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줄인다고 저출산 극복될까?

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2010년 03월 23일 화요일 제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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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이어 보건복지가족부가 낙태 근절에 나서면서이다. 여성계는 작금의 일방적인 낙태 논쟁이 여성, 노동자, 10대를 최대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쟁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구미식 낙태 논쟁이 한국에서도 불붙는 형국이다.

글 싣는 순서
1)낙태 논쟁에 가려진 ‘착취의 트라이앵글’
2)낙태 줄인다고 저출산 극복될까
3)6월 청소년 낙태대란 오나?
4)미국식 낙태논쟁, 한국에서도 불붙나?


낙태 논쟁에 불을 지핀 쪽은 정부이다. 낙태 단속을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려는 정부 안에서도 나오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낙태 문제를 저출산의 해결 방안으로 다루는 시각이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받는 이런 식의 논의는 국민 분열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여성계가 한 말이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 담당자가 국회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애초에 ‘국민 분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복지부였다. 취임 후 한동안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프랑스식 저출산 대책’을 언급했다. 2009년 2월6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장관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출산으로 생계 유지가 가능할 정도로 국가가 출산을 적극 지원해 성공한 프랑스 모델을 열심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재희 장관은 2009년2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낙태율을 반으로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장관은 얼마 안가 말을 바꿨다. 2009년 2월25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프랑스 수준의 대책을 한국에 적용할 때 필요한 재정은 19조2987억원에 달한다”며 “국가적으로 결단하기에는 솔직히 너무 벅차다”고 했다. 이에 기자가 “저출산 문제 해결은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같은 해결 방법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자 전장관은 낙태 문제를 언급하면서 “2005년도 조사를 보면 낙태가 34만명에 달한다. 낙태율을 반으로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주무 부처 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저출산과 낙태 문제를 연계시켜 발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모임)’ 소속 의사들이 낙태 근절 운동을 선언한 직후인 지난해 11월26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가 주최한 ‘제1차 저출산 대응 전략회의’에서는 ‘낙태 줄이기 캠페인’ 및 ’‘낙태 안 하는 사회환경 조성’이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발표됐다. 대통령도 참석한 이 날 회의에서 전재희 장관은 “저출산만 생각하면 등에 불을 지고 있는 심정이다. 과거에 한 낙태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낙태를 단속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장관의 발언으로 이미 움츠러든 산부인과 병원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진오비’에서 이름을 바꾼 ‘프로라이프 의사회’였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지난 2월 불법 낙태 시술을 행한 병의원 3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3월3일 보건복지가족부는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 피임 교육을 강화하고 미혼모 지원 등을 늘리는 한편 ‘불법 낙태 시술기관 신고센터’를 만들어 낙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여성계가 급기야 행동을 개시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앞둔 3월5일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4개 여성단체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의 임신·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을 선언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지난해 미래기획위가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낙태 문제를 거론할 때부터 여성계도 사태를 예의 주시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프로라이프가 동료 의사를 고발하고 복지부가 낙태를 단속하겠다고 나서면서 여성들이 절박한 처지에 몰리고 있다는 판단에 24개 단체가 나서게 됐다”라고 말했다.

여성계는 국가가 저출산을 타개할 수단으로 낙태 문제를 활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인구 억제책의 일환으로 낙태를 합법화하고, 심지어는 조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관련 기사 참조). 지난 2월27일 한국젠더법학회 주최로 열린 ‘저출산 시대, 낙태를 처벌해야 하나’ 세미나에서 이인영 교수(홍익대·법학)는 “낙태를 줄이는 만큼 인구를 늘릴 수 있다고 접근하는 방법은 상황이 변하면 인구를 줄이기 위해 낙태를 늘릴 수 있다는 결론도 언제든지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은애 홍익대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저출산 위기는 낙태 단속을 강화해 모든 존재를 무조건 태어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적절한 여건을 적극적으로 마련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재희 장관은 3월18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산하 여기자포럼에서 "(낙태 단속을 둘러싼 혼란은) 그간 몇 십년간 지키지 않으려던 법을 제대로 지키려다 보니 발생한 것"이라며, 향후 낙태 문제에서 법치 원칙을 적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재도 합법적인 낙태가 일부 허용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산부인과 의보 수가를 현실화하고 출산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한편 복지부 129 콜센터에 신고된 불법 낙태시술 병의원을 엄격히 단속하는 방식으로 낙태를 줄여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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