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12월6일 이회창(왼쪽)·심대평(오른쪽)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주인공을 판가름할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선거 구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금까지는 전통적인 여권 대 야권,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BBK 수사 발표 뒤 이명박 대 반이명박, 부패 대 반부패 연대 구도가 구축될 조짐이 보인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과 BBK 연대를 고려할 수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여기에 후보들의 합종연횡이 가시화하면서 ‘여다야다’(與多野多)의 다자 구도가 3각 구도로 변화되는 모습이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를 무혐의 처리한 것이 곧 ‘이명박 대세론’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여론의 흐름도 주목할 만하다. BBK 수사 발표 직후 실시한 디오피니언 조사(12월5일)에 따르면 BBK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비율이 56.9%로, ‘믿음이 간다’(35.9%)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또한 범여권이 주장하는 BBK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47.6%로 ‘반대한다’는(43.3%) 여론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검찰의 BBK 수사 발표 이후에도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상당수 존재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서치앤리서치 조사(11월28일)에 따르면 ‘BBK 수사 발표 뒤 지지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부동층의 규모는 20.2%였다. 투표 일주일 전까지도 결정하지 않겠다는 부동층은 무려 59.9%에 이르렀다. 현재 부동층이 20~35%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선거 막판까지 예측 불허의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부동층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 때는 대한항공 격추 사건, 1992년에는 초원복집 사건, 2002년에는 여중생 추모 반미 촛불집회 등이 선거 막판 부동층의 표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역대 대선 때마다 돌발 변수가 부동층에 영향

대선 최종 판세에 영향을 줄 핵심 변수는 무엇일까. 첫째, 정동영·문국현 후보의 조속한 단일화 여부이다. 두 후보의 단일화가 16일보다 빨리 이뤄지면 그동안 실종되었던 전통적 선거 구도가 복원될 개연성이 크다. 이러한 가능성은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디오피니언 조사 결과, 단일화 전 지지도는 이명박 44.7%, 이회창 20.8%, 정동영 16.9%, 문국현 4.9%였다. 하지만 단일화 때는 이명박 42.6%, 정동영 24.4%, 이회창 20.8%로 정 후보의 지지도가 정·문 후보 지지도의 단순 합보다 약 4% 포인트 높았다. 정·문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지면 그동안 침묵하던 전통적인 범여 지지층이 결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도권 호남 출신과친노 386세대가 이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이명박?정몽준 연대, 정동영?문국현 진보 연대, 이회창·심대평 보수 연대 중 어떤 합종연횡이 더 위력을 발휘하느냐이다. 디오피니언 조사에서 이들 합종연횡 호감도는 각각 44.0%, 26.1%, 20.7%로 나타났다. 이러한 합종연횡 연대가 지역별·계층별로 뚜렷한 대비를 보일 경우 선거 막판에 선명한 대선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셋째, 박근혜 전 대표의 이명박 후보 지지 강도 여부이다. 박 전 대표가 예상을 깨고 이명박 후보를 강도 높게 지지할 경우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크게 요동치면서 급격히 3위로 내려앉을 수 있다. 그동안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박 전 대표의 핵심 지지 계층인 영남, 보수, 50대 이상 고연령층에서 이탈이 가속화할 것이다. 넷째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향후 행보이다. 두 전?현직 대통령이 연대해서 범여권 후보에 대한 지지를 가시화할 경우, 호남과 친노 세력이 선거 막판 결집해서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후보들은 판세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반복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이기는 선거가 있고, 이기더라도 지는 선거가 있다. 선거 패배로 인한 ‘정치적 손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원칙 있는 패배가 미래 집권을 위한 강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형준 (명지대 교수, 정치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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