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11월 27일 미국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에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오른쪽)이 부시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손을 맞잡고 있다.
“이게 쉬운 일이었다면 벌써 오래전에 이뤄졌을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동의 영원한 앙숙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정 마련을 위해 11월27일 아나폴리스에 모인 40개국 대표에게 행한 개막식 발언의 한 대목이다. 지난 2003년 자신의 구상에 따라 구체화된 ‘팔레스타인 독립국’ 탄생의 목표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과정인지를 털어놓은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아나폴리스 회의 초반에 발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의 공동 합의문은 내년 말까지 기존 핵심 쟁점들을 해결해 최종 평화협정을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측이 운영위원회를 설치해 12월12일부터 공식 회담을 시작하며, 양측 대표인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이 격주로 만나 협상 상황을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만 되면, 이르면 2009년에는 이스라엘과 ‘신생국’ 팔레스타인이 서로 대등한 주권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공존하게 된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근 60년간 얽히고설킨 문제가 1년이란 시한 내에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토 재획정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의 재정착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카네기 재단의 데이비드 로스코프 선임 연구원은 “항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회담 초입은 희망적 얘기로 충만하지만, 세부 사항에 들어가선 늘상 회담이 좌초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실상이 그렇다. 1949년 로즈 회담에서 1991년 마드리드 회담에 이르기까지 양측이 분쟁 해결을 위해 수없이 회담을 가져왔지만 세부 실천 문제를 놓고 번번이 실패했다. 중동 평화의 초석을 놓았다는 오슬로 협정도 마찬가지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주선으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나 서로의 생존권을 인정하면서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전기를 마련하는 듯했다. 당시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 군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철수할 근거가 마련됐다. 오슬로 협정에 따라 향후 5년이란 과도 기간 중 영토 재획정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와 같은 핵심 쟁점을 풀어간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00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최대 유혈분쟁이 터지면서 오슬로 협정은 큰 타격을 입었다.

오슬로 협정이 이처럼 난항을 겪는 와중에도 중동 평화의 불꽃은 여전히 타올랐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목표로 단계적 실천방안을 제시한 중동 평화의 로드맵이 그것이다. 2002년 6월 부시 대통령이 최초 구상을 밝힌 뒤 이듬해 가시화한 로드맵에 따르면 우선 1단계로 2003년 5월까지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유혈폭력을 종식시키는 대신 이스라엘은 정착촌에서 철수하고, 최종 3단계에 걸쳐 2005년까지 영토 재획정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까지 해결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과 마찬가지로 부시가 마련한 로드맵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끊임없는 유혈 충돌로 인해 최근까지도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졌다.

ⓒAP Photo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주민은 압바스 수반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며 아나폴리스 회담을 반대한다.
이번 아나폴리스 회의는 2003년 로드맵의 후속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슬로 협정 이후 로드맵에 이르기까지 고질적인 핵심 쟁점을 어떻게 절충하느냐가 관건이다. 우선 핵심적인 쟁점 가운데 하나가 영토 재획정 문제.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 모두를 아우르는 독립국을 지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 지구에서 병력과 정착촌을 모두 철거한 상태다. 문제는 122개 정착촌에 26만7천500명의 유태인이 살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1967년 중동전쟁을 통해 강제로 이 땅을 점령한 이후 이곳에 자국민을 꾸준히 정착하게 했다. 팔레스타인은 서안 모두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안 모두를 돌려줄 수는 없고 수도 예루살렘과 인접한 서안의 정착촌, 구체적으로 서안 면적의 약 6%만큼은 그대로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현재 유태인 약 2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해 피난한 40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이스라엘 복귀 문제다. 팔레스타인 측은 이들 난민이 이스라엘 본토에 복귀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720만명의 이스라엘 유태인은 이들이 복귀하면 하루아침에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정체성이 소멸할 위험이 있다며 극력 반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측도 현실적으로 400만명전원이 이스라엘에 재정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최소 일정 수준의 난민은 재정착을 허용해 현지의 가족이나 친척과 재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재정착할 수 없는 난민에게는 이스라엘이 재정적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의 일부를 팔레스타인 요구대로 분리할 수 있느냐도 또 다른 핵심 쟁점. 구체적으로 팔레스타인 측은 지난 1967년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탈취한 동예루살렘을 돌려받아 이를 수도로 삼겠다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만큼은 지금 그대로 온전하게 수도로 보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핵심 쟁점 하나하나가 사소하지 않고, 지난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이다. 이 같은 쟁점들을 내년 말까지 해결해 평화 협정의 대미를 거두겠다는 것이 이번 아나폴리스 회담에 모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의 구상이지만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설상가상으로 향후 평화협정을 가장 앞장서서 이끌고 가야 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가 국내 정치적으로 취약한 입지를 갖고 있는 것도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허약한 연정을 이끌고 있는 이스라엘의 올메르트 총리는 어느 정도 양보를 해서라도 평화협정을 일구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적인 극우파 세력은 그의 양보를 처음부터 막겠다는 태세다. 이들은 특히 동예루살렘의 지위 변경에 대해 의회의 의결 정족수를 3분의 2 찬성으로 강제하는 임시법을 최근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올메르트가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에 양보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팔레스타인의 압바스 수반 역시 입지가 취약하긴 마찬가지다. 친서방파인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반이스라엘 과격파인 하마스가 승리해 내각을 주도하자 내각을 해산했고, 급기야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무력 점령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압바스는 명색이 팔레스타인 수반이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관할하는 지역은 요르단강 서안이다. 거기서도 그는 하마스 과격파의 극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하마스 지도부는 압바스 수반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권한이 없다고 보며, 이번 평화협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마스는 특히 이번 아나폴리스 회의를 부시 대통령에 대한 ‘송별 잔치’로 폄하하면서 연일 과격 시위를 벌이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동 전문가인 브루스 리델 선임 연구원은 “압바스는 최소 자국민의 절반 이상과 내전을 치르며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협상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향후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런 걸림돌 못지않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민이 과연 얼마나 협정을 신뢰하고 실천에 동참할 수 있느냐 하는 점도 큰 도전 과제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한 라디오 방송 여론조사 결과 이스라엘 국민의 62%가 향후 탄생할 평화협정을 지지하면서도 앞으로 반세기 안에 협정이 실현되기 힘들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중동 평화의 과제가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