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같은 매체를 통해서 천규석 선생의 글을 간간이 읽어온 터이지만, 눈썹에 힘을 주고 저서를 정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자의 강단 있는 언어와 추상같은 비판, 현실과 미래의 문명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제기되는 불편한 진실 가운데 역시 논란이 되는 것은 공정무역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생산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 위해 소비자와의 국제적인 직거래를 통해 커피나 초콜릿 같은 기호식품을 소비하는 공정무역 운동이 우리 사회에도 퍽 낯익은 것이 되었다. 언뜻 생각해보면, 오로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제3세계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다국적 기업의 커피나 설탕산업에 비해, 공정무역의 형태로 생산자의 소득을 더 많이 보전해주는 것이 윤리적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여러 형태의 시민단체나 생협을 중심으로 공정무역 상품이란 것이 출시되고, 윤리적 소비를 의식하는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다.

천규석씨(위)는 최선의 윤리적 소비는 자급자족을 촉진하는 소비라고 말한다.

그런데 천규석 선생은 그런 공정무역의 확산이 전혀 윤리적인 소비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공정무역이란 결과적으로 보면  히말라야 오지의 산악국가까지 (자급 대신) 세계시장에 예속시키는 데 일조하는데 그런 장삿속을 인도적 지원으로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 역겹다는 것이다. 천규석 선생은 다른 제조업도 그러하지만, 커피나 사탕수수 같은 대규모 단작농업에 의존하는 기호식품 생산이 유럽의 식민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고, 그것이 결국 토착 지역의 자급 구조를 붕괴해 오늘과 같은 수탈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일단 토착 지역의 자급자족구조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동시에 국내의 시민단체나 생협이 공정무역에 앞장서기보다는 도농 간의 농산물 직거래라는 원래 취지를 상기함으로써, 농업의 자급구조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도농 직거래가 원거리 거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생은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지역의 마을공동체 또는 농촌공동체와 노동조합들이 노·농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최근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에서 시작한 노동자 생협이 그러한 모델에 해당될 것이다.

자급자족은 ‘민중의 자치’ 가능케 하는 토대

선생은 최선의 윤리적 소비는 자급자족을 촉진하는 소비이며, 자급자족 구조의 내실화만이 생태적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자급자족이 단지 먹을거리 문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자급자족은 민중의 자치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 토대라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다. 거꾸로 오늘날의 세계분업적 무역체제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라는 존재는 이 토대를 붕괴시킴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는 반인간적 체제라는 것이다.

천규석 선생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다만 윤리적 소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국가와 자본의 가공할 압력을 거슬러 민중이 스스로의 삶과 민주주의를 보존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이 책에는 거듭 제기된다. 혹자는 이 책에서 제기되는 주장들을 현실성 없는 ‘근본생태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곰곰 읽어보면 백척간두에 선 문명의 임박한 파국에 대한 이유 있는 경고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명 이명원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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