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정착과 농경의 세계였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어제 같아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풍경·관계·면면에서는 선물을 주고받을 일이 없었다. 더구나 식구끼리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건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에게서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이건 네(게 주는) 선물”이라고 아버지가 말했기 때문에 그건 명실상부한 선물이었다. 19 75년 겨울 어느 날, 아버지는 점퍼 속에 강아지 한 마리를 넣어왔다. 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비닐봉지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그로부터 열 달 전쯤 내가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봄, 서울의 변두리 동네로 전학 온 내게 교실에 있던 아이들의 얼굴은 강철 가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강하고 무표정해 보였다. 그들은 냉정했고 나는 두려웠다. 한 해가 다 가도록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다. 

선물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다

아버지가 일평생 처음 선물로 강아지를 내게 줄 때 술냄새가 났다. 나는 봉지 속 강아지의 목덜미를 붙들어 현관 바깥 종이상자 속에 내려놓았다. 농경사회에서 가축은 집안에 들일 수 없는 게 원칙이었다.

아버지가 많은 식구 중 나를 특정해서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그날 밤 집에 들어오면서 만난 첫 번째 식구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의 선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기분은 묘했다. 어쨌든 아버지에게서 처음 받은 선물이었으니까.

한밤중에 나는 선물이 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내 옆, 옆과 그 옆, 그 옆에 자고 있는 그 누구도 잠을 깨거나 일어나지 않았다. 방을 나가서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가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선물이 우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사실 오줌이 마려웠던 것도 아니었다. 선물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선물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깡통에 물을 담아 가져다 주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추워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 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저녁 내 몫으로 받아서 먹다가 남겨두었던 백설기를 가지고 나와서 큰맘 먹고 내밀었다. 선물은 내 선물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저 동정심을 자극하는 끼잉낑 소리와 함께 온몸을 떨 뿐이었다. 나는 내 선물이 무시당한 데 대해 화가 났다. 선물을 철회했다. 백설기를 도로 집어 들면서 물은 그냥 두었다. 울다 보면 목이 탈지도 몰랐다.

방으로 돌아와 누웠을 때에도 선물의 울음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천둥 치듯 아버지는 코를 골았지만 선물의 가느다란, 여린 낑낑거림은 내 청신경을 철사처럼 긁어댔다. 결국 다시 밖으로 나갔다. 빼앗았던 선물을 다시 주고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선물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자 신음이 그쳤다. 안아주자 경련을 멈추었다. 선물은 너무 어려서 백설기를 먹을 수 없었다. 물을 마실 줄도 몰랐다. 다만 내 연민과 내 손길에 반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공급이 중단되면 즉시 울음이 시작됐다. 결국 나는 내복 바람으로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강아지를 선물했다. 밤은 새벽을 선물했다. 선물은 내게 연민을 선물했다. 나는 철면피한 내 동무들이 태어나서 자란 곳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나처럼 울며 떨던 존재임을, 따뜻한 강아지를 안고 쓰다듬으며 깨닫고 있었다.

기자명 성석제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