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한국 사회를 뒤흔든 큼직한 사고를 많이 겪었다. 해남의 야산에 비행기가 추락하고, 부안 앞바다 뱃길에서 여객선이 침몰했으며, 한강 성수대교가 토막났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희생자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로 보아서도 큰 불행이었지만, 기자로서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드문 계기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언론도 포함된다.

재난 현장은 곧잘 언론에도 재앙의 현장이 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 입증되지 않은 진술, 불명확한 소문, 잘못된 정보가 ‘팩트’가 되어 그대로 신문에 실리고 방송을 탄다. 대표적인 예가 1993년에 발생해 292명이 희생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다. 당시 언론은 사고를 일으킨 배의 선장이 몰래 탈출했다는 일부 주민의 증언을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그 결과, 선장은 수백명을 희생시키고 달아난 파렴치범이 되었다. 수사기관은 선장에 대해 지명수배령까지 내렸다. 나중에 선장은 시신으로 발견됨으로써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를 죽음으로 반박했다.

재난 현장의 취재는 일상적인 취재보다 훨씬 어려운 반면, 뉴스 수요는 폭증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재난 현장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 선정적이고 눈길을 끄는 뉴스 아이템들이 무분별하게 등장할 온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일선 기자의 투철한 프로 의식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 바로 대형사고 현장이다.

최근 MBC는 아이티 지진 현장에 파견된 119 구조대원(위)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하면서 현장 지원차 나온 도미니카 주재 한국 대사의 발언을 ‘왜곡’해 물의를 빚었다.

최근 MBC의 아이티 지진 관련 보도가 큰 물의를 빚었다. 현장에 파견된 119 구조대원들의 열악한 상황을 지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현장 지원차 나와 있던 도미니카 주재 한국 대사의 발언을 맥락과는 다르게 짜깁기해 뒤섞음으로써 그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보도가 크게 물의를 빚은 것은,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왜곡에 가까운 보도 행태였기 때문이다. 공자님 말씀도 적당히 잘라 붙이면 도척(盜 :중국 춘추시대의 큰 도적)의 협박과 비슷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게 편집의 힘이고 함정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당 보도는 이렇게 대사의 발언을 편집하고 왜곡함으로써 대사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뉴스를 보는 국민을 오도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MBC가 공식으로 사과한 것은 당연하다.

취재진 보며 진저리 치는 주민들

흥미로운 것은, 이 보도의 진실을 캐는 과정에서 아이티 현장의 한국 구조단 상황이 속속 드러난 점이다. 지진 현장은 당연히 모든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 때문에 취재진과 운영본부나 도미니카 대사관 측 사이에 소소한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사건·사고가 나면 대책본부와 취재진 사이에는 크고 작은 충돌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러한 충돌 가운데 많은 경우가 재난 현장에서 언론이 보도의 사명을 지나치게 내세움으로써 발생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연히 사고 현장에 가까이 살게 되어, 평소에 보지 못한 언론의 취재 보도 활동을 지켜본 주민이라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마련이다. 서해 훼리호 사고 때 자기 가게를 기자들의 프레스 센터로 내주며 편의를 제공했던 주민은, 이 사건 이후 언론이라면 진저리를 친다고 한다. 이번 아이티 사건에서도 현장에 있던 구조대나 봉사대원, 외교부 직원 등은 문제의 MBC 보도를 포함한 언론의 취재 보도 행태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재난 현장에서 기자들도 먼지 뒤집어쓰며 열심히 일한다. 열심히 일하고도 왜 그런 대접을 받는지, 언론이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기자명 허광준 (위스콘신 대학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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