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 11월29일 김장수 국방장관(왼쪽)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오른쪽)이 국방장관회담 종결 회의에 앞서 열린 오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남북 관계의 전 분야에 걸쳐 많은 합의를 낸 역사적인 2007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두 달 가까이 됐다. 그동안 남북 정상선언의 이행에 대한 총리회담이 열려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논의됐고 이번엔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까지 개최돼 남북 군사 교류에 새 장이 열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00년에 열린 첫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공동선언에 안보 및 군사에 관한 부분이 들어 있지 않아 후속 회담의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양 정상 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고 하나 막상 구체적 합의사항에서는 빠졌고 이는 두고두고 남북 관계에 걸림돌이 됐다.

2000년 9월에 제주도에서 제1차 국방장관회담이 열렸지만, 우리가 평화·안보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시도한 데 대해 북한은 회담 목적을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 공사를 위한 군사 보장 문제에 국한하려 했다. 결국 합의문에 군사적 긴장 완화와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 및 전쟁 위험 제거를 위한 상호 협력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구체적 조처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해 11월에 열기로 한 2차 회담도 군사 실무회담이 지연되면서 계획대로 열리지 못했고, 그 뒤에는 북한이 우리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 등 여러 이유를 들어 회담 개최를 거부해왔다.

남북 군사관계의 냉각은 비극적 사태를 불러왔다. 금강산 관광이 진행되고 경의선·동해선 연결공사가 한창이던 2002년 6월에 서해교전이 일어나 우리 해군함정이 공격을 받고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북한은 이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했지만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이어지지 못했고, 서해에서의 긴장과 갈등은 계속됐다. 2004년 6월 남북은 두 차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어 비무장지대에서의 선전 수단 철거와 서해상 상호 교신을 통한 제한적 신뢰구축 조처에 합의했지만, 군사적 신뢰구축 조처를 확대하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후속 협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북한은 2006년에 재개한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재차 분명히 하면서 서해 해상경계선이 우선 확정되어야 공동 어로수역 설정이나 군사적 보장 조처, 서해상 충돌 방지를 위한 추가 개선 조처 등 여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방침을 견지했다. 또한 북한은 올해 5월 이후 해군사령부 발표 등을 통해 서해에서의 해상분계선 재설정을 다시 요구하면서 충돌이 재발할 경우 ‘제3의 서해교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몇 차례 공개 경고하기도 했다. 서해 평화는 현 시점에서 남북 군사관계의 시금석이자 가장 첨예하고 절박한 안보 현안으로 다가와 있다.

2007 정상회담이 남북 군사 관계 얼음 깨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군사관계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통해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 남북 정상선언 제3항에서 군사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과 구체적 협력 방안 모두에 합의했고, 제대로 이행될 경우 이는 향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방안은 서해 NLL 일대 수역을 평화의 바다로 바꾸는 획기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양 정상은 공동 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한강 하구 공동 이용 등을 결합한 패키지에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NLL의 성격과 우리 국민의 인식,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김 위원장은 이를 경청했으며, 군사 대결 관계를 먼저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그 결과 NLL을 둘러싼 양측 간 긴장을 완화해 나가는 방법으로 당장의 해상경계선 논의 대신 평화와 번영을 결합한 새로운 방안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남북 정상 간에 합의된 평화수역의 개념은 그동안 얘기되어온 완충수역 내지 비무장수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서해 접경 수역의 일정 범위에 양측 어선이 조업할 수 있는 공동 어로구역을 설치하고 이 수역에는 양측 해군함정이 들어가지 않게 함으로써 사실상 육지에서의 비무장지대(DMZ)와 같은 구실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향후 우리 군의 NLL 관리 입장이 유지되어 북한 해군함정의 월선을 지속적으로 방지하는 가운데 그 일대 수역의 일정 범위에 남북의 해군함정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쌍방 무력의 근접 배치와 조우에 따른 우발적 충돌의 위험성은 많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남북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군사 문제를 논의할 국방장관회담까지 열렸다. 서해 평화 문제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개성공단의 통행·통신·통관 문제와 경의선·동해선 철도 운행, 한강 하구 개발, 그리고 점차 늘고 있는 각종 교류·협력에 대한 군사적 보장 조처의 확대는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 시급히 필요한 조처였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핵심 의제인 서해 공동 어로구역 및 평화수역 설치와 군사적 보장 등 군사적 신뢰구축 조처가 이미 정상 수준에서 합의되어 부여된 것이니만큼 개최 이전부터 결렬 가능성은 적었다. 다만 북한 군부가 그동안 서해 해상 경계선 문제에 대해 보인 강한 집착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NLL을 무시하는 공동 어로구역의 설치 범위를 주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회담장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역시 공동 어로구역의 설치 범위에 관해서였다. 북한은 서해 NLL과 자신들의 이른바 영해계선 사이에 공동 어로구역을 설치하자는 종래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이는 사실상 NLL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남북 간의 경계선을 그만큼 남쪽으로 끌어내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어서 수용하기 곤란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형적 특성이나 어족 자원, 중국 어선 불법조업 현장 등을 고려해 공동 어로구역이 합리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는 방침을 견지했다고 한다.

공동 어로구역 설치 문제에 관해 구체적 합의가 나오지 못하면서 국방장관회담의 전체적 성과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평가가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과거 모든 논의의 걸림돌이었던 서해 해상 경계선 문제는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해 협의․해결하기로 했고 공동 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문제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어 이른 시일 안에 협의․해결하기로 하였으며, 서해 공동어로에 대한 군사적 보장 대책은 별도로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최우선으로 협의․해결하기로 했다.

ⓒ뉴시스2002년 6월 대한민국 해군 함정(오른쪽)이 공격해온 북한 경비정(왼쪽)을 들이받고 있다.
남북 군사 관계 ‘협의 메커니즘’ 정립도 성과

국방장관회담 합의서에는 남북 정상선언을 군사 차원에서 해석하고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조처들이 망라돼 있다. 여기에는 군사적 적대관계의 종식과 긴장 완화, 충돌 방지와 우발적 충돌의 중지 및 해결, 서해 해상 충돌 방지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처, 한강 하구와 임진강 하구의 공동 골재채취구역 설정, 한국전쟁 유해 발굴 협력 등과 아울러 북한 민간 선박의 해주항 직항,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 수송, 개성·금강산 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백두산 관광 등에 대한 군사적 보장 조처가 포함된다.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 군사관계의 협의 메커니즘이 정립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제3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내년 중 서울에서 열리기로 한 것은 국방장관회담의 정례화와 제도화를 의미하는 큰 성과이며, 과거 남북 기본합의서에 나와 있지만 실제 구성되지 못했던 남북 군사공동위원회가 구성·운영되어 군사적 신뢰구축 조처를 본격적으로 협의하게 된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결국 앞으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가 활성화되면 상위의 국방장관회담이 가끔 열리는 가운데 기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나 군사실무회담은 하위 회담으로 체계화될 것이다.

결국 이번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많은 실질적 성과를 낳았으며, 이는 앞으로 정비된 회담체계 속에서 더 많은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첨예한 견해 차가 상존하는 남북 군사관계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는 점진적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기자명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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