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에 수록된 단편 ‘꽃가마배’는 제3세계 여성의 한국 삶을 다뤘다. 위는 다문화 가정 모습.

김재영의 신작 소설집 〈폭식〉을 펼치면 ‘꽃가마배’라는 단편소설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의 문제적 인물은 능 르타이라는 젊은 타이 여성이다. 이 여성은 결혼 이민을 통해 한국으로 왔지만, 결혼을 결심한 동기나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 등은 여러 장애로 점철된 것이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다소 기묘한 표현이 오늘날 저널리즘에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소설 속에서 제3세계 여성이 한국으로 결혼 이민을 결심하는 동기는 결국 경제적 궁핍 탓이다. 20대 젊은 여성이 중년의 하반신 장애 남성과 자발적으로 재혼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가난이 한계상황임을 의미한다. 한계상황에서 하는 막다른 선택은 비록 자발성의 형식을 띠었더라도, 실제로는 화폐와 육체를 교환하는 성 노동에 가깝다.

실제로 상처한 중년 남성에게 결혼을 끈질기게 권유하던 고모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파출부 부르는 것보다 색시 들이는 게 훨씬 싸다니까. 월급 안 주고 밥 먹여주면 되니까.” 물론 능 르타이가 이러한 한국인의 냉혹함을 몰랐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능 르타이는 그 남자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할 수 있다고 타이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물론 능 르타이의 이런 의지적인 희망은 체념일 수도 있고,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마술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숙명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숙명론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한국에서 그녀의 삶은 대체로 비극적이었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결국 남편이 죽은 뒤 집을 떠나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음에 던져지는 것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이 소설에서 우리는 능 르타이의 복잡한 내면을 유추하게 만드는 단서를 작가가 섬세하게 기술하지 않는 데에 불만을 표할 수도 있다. 사실 능 르타이는 한국어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였고, 그래서 “나는 야자 껍질 속의 지렁이로 살고 싶지 않아요”라는 그녀의 절규 역시 나중에야 소설의 화자인 ‘나’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다.

‘따뜻한 화해’라는 상투적 진술 거부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능 르타이의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난 딸로, 격렬하게 외국인 계모를 부정했지만, 그녀가 죽자 이복동생을 찾아 타이로 떠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가 이 소설 속에서 감당하는 기능은 패러독스다. 그녀의 애인은 영어학원 강사인 마이클. 마이클이 미국으로 떠나고 3개월 뒤, 그는 연락이 끊긴 마이클을 만나기 위해 미국행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다. 거절 이유는 안정된 재산과 직업이 없어 불법 체류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

타이 여성을 경멸적으로 바라보는 ‘딸’의 인종적 편견이 제시된 후, 그녀 자신이 미국의 인종적 편견에 봉착하게 되는 장면이 겹쳐지면서 패러독스는 진가를 발휘한다. 그렇게 미국 입국을 거부당한 딸이 자신이 거부했던 계모가 낳은 이복동생을 찾아 타이행을 선택하는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작가가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은 따뜻한 화해라는 상투적 진술이 아니다.

소설에서 작가는 꽃가마배를 타고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외국인 허황옥과 관련된 신화적 해석을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이것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평등한 잡종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명 이명원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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