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경상도에 있는 한 사찰의 큰스님께 출간 문의를 하러 일간지 종교기자를 했던 분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평일이라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 변의 봉분을 바라보며 무심히 “우리나라는 사방 천지 묘지네”라고 내뱉자 기다렸다는 듯이 동행한 분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저 묘는 좌청룡이 우백호에 비해 약해 명당이 아니다” “이 근방에 송강 정철의 묘가 있는데 그곳이 형제간에도 양보하지 않는 천하명당이다” 따위. 동행한 분을 전직 기자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풍수가였다. 게다가 2000장 분량의 원고까지 다 써놓으신, ‘준비된 저자’였다.   

〈대한민국 명당〉은 ‘풍수 입문 40년’의 종교 전문기자 출신인 저자가 전국 풍수 대가 50여 명과 4년에 걸친 명당 답산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신라 말부터 2000년대까지 나라를 세운 왕을 비롯해 백성을 살핀 문무 관료들,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 국부(國父)들의 묘 터와 생가 터, 사찰과 교회, 경복궁, 유엔 본부, 교보빌딩에 이르는 근현대 건물 등 53곳의 명당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명당 이야기로 물꼬를 트고 있지만 터와 인물의 내력을 풀어가다 보면 당시의 시대상, 인문학적 정보와 사건, 향토문화까지 자연스레 연결되어 풍수 및 역사 지식 습득뿐만 아니라 역사소설을 보는 듯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든 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를 만나 “선생님 매일 밤 꿈에 묏등만 나와요. 그리고 축구공도, 편의점의 먹음직스런 호빵도, 심지어 사람의 신체 일부까지 둥근 것은 죄다 봉분처럼 보이고…. 또 할아버지 묘에 성묘하러 가서도 좌청룡·우백호가 어쩌니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읊게 돼요”라고 하소연하자 “최 선생 반풍수 다 됐네그려. 하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거 잊지 말게나” 하며 웃으셨다.

직장과 집 어느 한 자리 마음 편히 누워 쉴 곳 없는 세상이다. 몇 년, 몇십 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 편히 누울 한 평의 천국을 미리 점지해보는 것은 어떨까.

    

기자명 최정원(글로세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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