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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커트 보니것 식으로 시작해 보자.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기만 하면 감동을 주기란 상대적으로 쉬운 법이다. 그러나 웃음은 다르다. 제대로 된 농담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농담은 무에서 시작해 쥐덫을 만드는 것과 같다. 터져야 할 때에 터지게 하려면 정말 피터지게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11월23일에 방영된 ‘YTN 돌발영상’은 어떤가.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가 실제로 언제 만났는지-이명박 후보 측 주장은 2000년 1월, 김경준씨 측 주장은 1999년 초-에 대해 양측이 공방을 벌이던 가운데 고승덕 변호사(사진 오른쪽)가 ‘결정적 증거’가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데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이게 이명박 후보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증거였던 거다. 내내 지켜보던 기자들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회사가 2000년 2월에 설립됐는데 이명박 후보 측 주장대로라면 한 달 만에 (몇 백억원이나 하는) 회사를 만들었다는 얘기냐”라며 힐문하자 당황한 표정의 고승덕 변호사가 “오늘… 이것(메모)은 양념으로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라며, 슬쩍 농을 친다. 거듭되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흑기사로 등장한 홍준표 의원(사진 왼쪽). “하나(이명박 후보)는 건설통이고, 하나(김경준씨)는 금융통이니까… (한 달 만에도 회사 설립이 가능하지), 이명박 선배가 ‘무데뽀’ 기질이 있어서”라며 짐짓 우습다는 포즈를 취한다. 이때 재차 질문하려는 기자의 입을 막으며 던진 그의 한마디가 아주 걸작이다. “식사하셨어요?” 그리하여 등장한 신조어가 바로 ‘양념 승덕 식사 준표’다. 11월24일 다음 아고라에 ‘식사 준표! 양념 승덕!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라는 글은 11월29일 현재 13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읽었고, 20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려 있다.

한편, 네티즌 사이에서는 고승덕 변호사의 ‘이것은 양념’과 홍준표 의원의 ‘식사하셨어요?’ 발언이 결코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이명박 후보의 선거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는 조롱 섞인 농담도 회자되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11월27일에 공개된 각 후보들의 CF 코드는 ‘감동’. 그 가운데 이명박 후보가 들고 나온 게 공교롭게도 빨간 양념장을 듬뿍 넣어 국밥을 말아 먹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웃음은 어렵지만 감동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보니것의 말을 새겨들었던 것일까? 확인할 길은 없으나 ‘국밥 CF’ 역시 ‘우왕ㅋ굳ㅋ’한 감동을 주는 것 같진 않다. 아아, 정말이지 제대로 된 농담을 한다는 것(감동을 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참고로, ‘우왕ㅋ굳ㅋ’이란 ‘아주 좋다’는 뜻의 신조어. 아래에서 유래했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cartoon&no=134652.

기자명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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