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비인가?” 소설 〈롤리타〉를 쓴 20세기 천재 문학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평생 나비를 쫓아다니며 채집하고 분류한 인시류(鱗翅類) 연구가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나비에 사로잡힌 한낱 호사가로 여길 뿐이다. 과연 그러할까? 후대의 곤충학자 발린트와 존슨은 나보코프가 수행했던 연구를 검증하면서, 그가 부전나비아과로 알려진 블루 나비의 분류체계에 대한 실제적인 전문가였으며, 문학적 천재라는 이유로 오히려 아마추어로 평가 절하됐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후대 학자들이 나비의 날개 위에 있는 점에서 세상의 모든 경이를 발견했던 ‘과학자’ 나보코프의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나보코프의 연구는 길고 지루하며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었다. 우아하고 품격 있는 옆모습의 블루 나비를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을 바라본다. 그의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아름다움과 황홀경을 끝없이 추구하는 부조리한 열정,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명명하고자 하는 학자의 깊은 애정, 침묵만이 지배하는 현미경적 세계에 매료된 연구자의 불가해한 의지를 만날 수 있다. 유려한 문체를 통해, 쪽마다 그가 느낀 설렘과 떨림이 흐르는 물결처럼 전해온다. 

아무도 연구하지 않은 나비를 나보코프는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백색의 광장”이라며 “너무나 유혹적이어서 나로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다”라고 표현한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천재적인 영혼의 고독한 여정을 엿보는 기분이랄까?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시류 연구가였지만, 잊힌 독학자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걸림돌은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 싶다. 때문에 이 책이 선사하는 독특한 기쁨, 내면의 희열, 아릿한 슬픔, 저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듯한 감동은 분명 기나긴 독서를 감내하는 소수 독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일 것이다.

    

기자명 허영수 (해나무 기획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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