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편집위원)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을 욕심냈던 신정아씨를 그리도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던 언론이 대한민국 총감독을 꿈꾸는 이명박 후보의 수많은 의혹은 왜 파헤치지 않는가. 그의 ‘구정물’표는 왜 줄어들지 않는가.
처음에는 그 여자가 한심했다. 학벌 없이는 행세하기 힘든 한국 사회라지만, 해도 너무했다. 허위 학력으로 대학교수를 딴 것도 모자라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까지 탐냈으니 동티가 날 만도 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여자, 신정아가 슬슬 불쌍해졌다. 그녀를 향한 사회적 관심과 매질이 그 여자의 공적 지위나 저지른 범죄 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뜨겁고 독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저 여자라면 참 황당하고 억울하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당시 언론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조차 ‘신정아’ ‘변양균’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정도로, 두 남녀의 과거사를 샅샅이 중계 방송했다. 두 남녀의 공적인 행위건, 지극히 사적인 남녀상열지사건, 언론의 집요한 추적과 촘촘한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짓으로 쌓아올린 성채 위에서 그 여자는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또 다른 거짓말을 쏟아냈다.

언론은 전문가들을 총동원해서 거짓말하는 자의 심리와 사회적·환경적 요인을 집중 분석했고, 일부 언론은 그 여자에게 ‘인지부조화’ ‘다중인격’ ‘공황장애’ 따위의 레테르를 붙이기도 했다. 신문 사설들은 한결같이 ‘신정아 사건 수사에 쏠리는 세간의 의혹은 정당하다. 국민이 원하는 건 진실이다’라고 일갈하면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라고 주문했다. 사건의 발단이 된 학력 허위 기재는 사회 전체의 학력 검증 시스템을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대대적으로 재확인 작업이 벌어졌다. 이렇듯 요란한 의제 설정 과정을 거치면서 ‘공인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사회 합의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다시, 문제는 거짓말이다. 이번 주인공은 일개 대학교수였던 그 여자, 신정아와는 급이 다른 인물이다. 그 여자는 국제 행사 총감독을 욕심냈지만, 그 남자 이명박은 한 나라의 총감독을 꿈꾼다. 그저 막연한 꿈이 아니라, 바야흐로 이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인물의 비중 못지않게 연루된 사건의 성격도 다르다. 이번 사건은 그림 중개나 전시회를 매개로 구전이나 챙긴 그 여자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잘나가던 벤처 금융회사가 주가 조작을 통해 300억원이 넘는 시세 차액을 올려 그 돈을 빼돌렸고, 그 결과 수백 명의 개미투자자가 피눈물을 흘린 사건이다. 가정이 파탄나고 심신이 황폐해진 가장들이 거리로 나앉았다.

그 남자, 그런 기업과의 연관성을 철저히 부인했다. 문제 인물 김경준과 사업을 함께했지만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정리했고, 주가 조작에 관련된 BBK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도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면계약서? 아예 없다고 했다. 이면계약서가 제출되자 막도장이라 했다. 도장이 진본임이 알려지자 서류 자체가 위조됐단다. 가히 ‘거짓말의 퍼레이드’다.

거짓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 잣대

이쯤 되면, 국민은 등 돌리고, 언론은 취재력을 총동원해 그 남자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질 줄 알았다. 그 여자와는 견줄 수 없이 어마어마한 공인, 나라의 앞날을 책임질 지도자이므로. 또 거짓말에 유난히 민감한 한국인, 대한민국 언론이기에.

근데, 참말이지 희한한 일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거짓말만으로도 지도자로서 품성에 의문을 품기에 충분한데도 ‘구정물’표라는 그 남자의 지지율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다. 언론은 그 여자 사건에 발휘했던 왕성한 호기심과 감투정신을 어딘가에 처박아둔 채, 여·야당의 주장을 기계적으로 중계 방송할 뿐이다. 어디 개인만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초일류 기업, 노조를 인정하지 않지만 세련된 기업 문화를 자랑해온 삼성이 거짓말에서도 초일류 수준임이 최근 들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득, 감옥에 있는 그 여자 신정아의 심경이 궁금해진다.

기자명 서명숙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