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지적 성숙의 지름길이다.

서재인이 교양인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양인은 서재인이 될 확률이 농후하다. 이런 요지의 문장을 읽은 것은 최근 출간된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서양사)의 〈교양의 탄생〉에서였다. 한국에서 문화사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2000년대였는데, 일찍부터 이광주 교수는 유럽의 문화사와 지성사를 소개하고 연구해왔다. 지금은 절판된 루이스 A. 코저의 〈살롱, 카페, 아카데미〉의 번역자로 저자의 작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유럽에서 근대적 공론장이 살롱·카페·아카데미와 같은 시민적 친교의 장소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매우 풍부한 사례를 원용하면서 경쾌하게 설명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학교 주변의 카페와 주점에서 열띤 세미나를 벌이던 청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미나라고 했지만, 불혹에 이른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장소의 풍경은 지적 갈증보다는 우리가 ‘불행 대결’이라고 조소하듯 명명했던 ‘너절한 가족사와 더러운 정치 현실에 대한 절규’가 대부분이었다고 기억된다. 과연 그런 중구난방의 술주정이야말로 청년기에 거쳐야 하는 지적 성숙의 통로였을까?

〈교양의 탄생〉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는 간명한 사실은 참다운 교양인의 풍모라는 것은 싸늘한 서재에서 창백한 손끝으로 페이지를 넘겨가는 평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광장과 살롱에서 벌이는 정열적인 대화를 통해 배양된다는 점이다. 지(知)에 대한 사랑이란 광장과 대화에 대한 욕망과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러니 인류사의 위대한 철인(哲人)이나 성인(聖人)은 하나같이 걸으면서 생각하고, 먹고 마시면서 골똘하게 대화를 나눴던 게 아닌가.

지성과 교양의 역사 종횡무진 횡단

향연(饗宴)으로 번역되는 고대의 심포지엄 역시 오늘과 같이 ‘문어체의 논문 읽기→형식적인 토론→갑시다 뒤풀이로’의 분절이 아니라, 광장에서 먹고 떠들면서 세상에 대한 의문과 해명을 흥겹게 벌이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식사회란 ‘심포지엄’은 많은데 제대로 된 ‘향연’은 부재하는, 기묘한 서재인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교양인의 탄생〉은 유럽적 인문주의의 계보학적 탐색을 보여주되, 그것을 개념화하거나 추상화한 담론으로 고정하지 않고 생생히 실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적 구성을 통해 전개하기 때문에, 좋은 소설책을 읽듯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교양 개념의 형성 과정에 깃들어 있는 문화사적 단층에 대해서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고대 그리스  철인들의 세계가 중세의 교부철학에 의해 억압되고, 그것이 다시 르네상스 이후 세속적 인문주의에 의해 극복되다가, 근대에 이르러서는 민족주의와 공화주의와 결합되고, 그것이 다시 시장권력과 자본에 의해 재편되는 상황까지, 지성과 교양의 역사를 종횡무진 횡단한다.

아쉬운 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민중의 지적 성장과정에 대한 탐구가 다소 미약하다는 점이다. 아직 ‘시민’이 되지 못한 ‘인간’에게 대저 교양이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

기자명 이명원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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