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아침, 서울 광화문.
광장 한켠에 앉아 무릎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는 임인환씨(45)씨는 팔당댐 인근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이다. 원래대로라면 서울 도심이 아니라 비닐하우스 흙 밭에서 한창 손을 놀릴 시각이다. 하지만 그는 21일부터 흙을 떠나 서울로, 서울로 아스팔트 길을 걷고만 있다. 최종 목적지는 여의도 국회 앞. 4대강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농사꾼 임씨가 몸뚱아리 하나에 의지해 50여km의 여정을 나선 것이다.

도보 순례 나선 팔당 농사꾼 임인환씨
원래 팔당댐 농민 22명은 22일 오전 9시에 남양주 팔당댐에서 출발해 국회 앞까지 도보 순례를 벌이기로 했다. 이미 남양주시 경찰과 협의도 했고 예비답사도 마쳐놓았다. 하지만 당일 아침 경찰 병력 200여 명이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도보 순례단을 막았다. 경찰과 실랑이가 이어지자 임씨가 먼저 단독으로 도보순례를 떠났다. 이어 스물한 명의 농민들이 4~5명씩 무리를 지어 방학동 등 서울의 몇 개 지점에서 도보 순례를 시작했다. ‘다함께’ 순례가 ‘따로 똑같이’ 순례로 바뀌어 서울로 향한 것이다.
임씨는 팔당-덕소-구리-제기동을 거쳐 신설동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22일 오전부터 다시 걸음을 옮겼다. 10시께 종로에 도착한 그는 “밭에서 일하는 건 하루 종일 해도 끄떡없는데 걷는 것은 쉽지 않다”며 나이를 실감한다고 웃었다. 연두색 깃발을 들고 4대강 사업 반대 문구를 가슴팍에 두른 그가 지나는 서울은 추위가 다소 풀렸다고는 해도 여전히 바람이 매서운 날씨였다.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시절 팔당 유기농 단지를 찾아 격려한 이명박 후보의 사진을 담은 플래카드.
대통령 사진 거꾸로 들고 다니는 팔당 사람들

농사를 지은 지 7년, 귀농인인 그는 팔당댐 인근 두물머리에서 논 1000평과 시설하우스를 통해 딸기·양상추 등을 재배하고 있다. 팔당 지역은 친환경 유기농 농법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지난 2007년 직접 찾아와 격려를 한 곳이기도 했다.

요즘 농민들은 대통령이 방문했던 당시의 사진을 프린트해 거꾸로 들고 다닌다. 그 같은 격려가 하루아침에 거짓이 되어버린 데 대한 항의 의미이다. 이번 도보 순례 역시 서울 시민들에게 팔당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행사였다. 임인환씨는 “그저 다함께 걷는 일일 뿐인데 막아선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다같이 걸었다면 더 힘이 났을 텐데 아쉽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50여 km를 걸어오는 동안 격려해 주고 4대강 사업 반대에 공감해준 사람들이 있어서 힘이 났다고 한다. 임씨는 “여기 분들도 출근길이다 뭐다 해서 바쁜 일상을 사는데 그래도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따로 똑같이 서울로 향하는 노태환(앞에서 두번째)씨 일행
같은 시각, 사직공원 앞에도 4명의 팔당 농민들이 국회를 향해 가고 있었다. 노태환씨를 비롯한 일행은 21일 오후 1시30분께 서울 방학동에서 도보 순례를 시작했다. 이들은 22일 오후 2시 30분께 22명 농민들 모두 국회 앞에 모여 생명살림기원제를 열 예정이다. 19일째 단식중인 유영훈 팔당공대위 상임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단식을 해제하기로 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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