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정치가 발전하려면 한나라당(위)·민주당 같은 거대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문제는 다시 정당(政黨)인가? 지난해 이른바 촛불 정국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대의제와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촉발된 일종의 ‘정당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학술적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을 잠깐 봐도 빠지는 법 없이 등장하는 게 정당 아니던가. 그런 정당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던 필자의 눈에 새삼스럽게 들어온 책이 바로 이 책, 책세상에서 펴내고 있는 비타악티바 개념사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정당〉이다.

개념사 시리즈 취지에 맞게 ‘왜 정당인가’ ‘정당이란 무엇인가’ ‘정당 모델은 어떻게 변모해왔는가’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은 그러나 단순한 개념 풀이 이상의 값을 충분히 한다. 우리가 익히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현실과 정치학의 정당론을 겹쳐 살펴보면서, 현실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론적·개념적 논의 부분에서도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강하게 느낄 만하다. 카츠와 마이어가 제기한 카르텔 정당 모델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모델에서 정치는 직업 정치인에 의한 ‘국가 경영’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면서, 의회 권력은 국가 경영권을 장악한 정당이나 ‘정당 정부’로 넘어간다. 결국 ‘정당-국가-막강한 이익 집단’으로 구성되는 삼각 카르텔이 형성된다. 이러한 카르텔에서 정당들은 점차 이익집단에 종속되고 행정부와 주요 정당 지도부 간 공모는 사법 권력과의 공모로까지 이어진다. 이쯤 되면 정당은 의회와 시민을 매개하고 대표하는 본연의 기능을 잃고 공모 관계에 있는 집단들과 ‘후원-수혜’ 관계에 빠져들어 주요 정치 엘리트들의 ‘도당’(徒黨)이 되어버린다.

한국 정당의 네 가지 과제

어쩌면 이렇게 정당 이론 모델과 우리 현실이 정확하게 들어맞을까? 그렇다면 정당의 미래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정당의 노선 전환을 위한 리더십 작동과 성공 요인 몇 가지를 거론하지만, 더 근본적인 과제는 정당의 노선 전환에 있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와 미래 그 자체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당의 미래는 개별 정당들의 경쟁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시대 상황에 조응하는 것으로 전환해낼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 ‘한국 정당정치의 미래’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한국 정당정치 발전을 위한 과제는 정당에 관한 생산적 논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정당 활동이 사회의 균열을 더 강력하게 반영해야 한다. 고용 및 소득 불안정 같은 국민 삶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의 해소에 집중함으로써 국민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선거 승리만을 위한 정략적 이합집산이 아니라 이념과 정책의 정체성에 따라 정당이 생성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 균열을 바탕으로 기성 거대 정당에 유리하게 되어 있는 선거 제도와 선거법을 바꿔서 새로운 정치 세력의 원내 진출 장벽을 대폭 낮춰야 한다. 넷째, 국민 소환권과 국민 입법 발의권을 현실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이해 및 요구와 괴리된 채 정당 간 소모적 갈등만 부추기는 대립 쟁점의 형성을 억제해야 한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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