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10년 전 마하티르 총리(위)가 이끄는 말레이시아는 IMF 처방을 거부하고도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네 나라는 이제 막 경제 위기 속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그 대응 방법에서 뚜렷이 대비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우등생’으로 불린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IMF의 처방을 거부하고 ‘반시장적’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독자 노선을 걸었다. 같은 충격에 다른 처방을 내린 지 10년, 이 두 나라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은 IMF의 처방과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면서 혹독한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외국 자본에 국내 시장을 더욱 개방했고, 경제 위기의 시발점이 된 대기업과 은행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며, 국가재정 지출은 이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 몰려들어온 외국 자본은 이제 한국 경제 곳곳에 포진해 있으며, 한국 경제와 외국 경제 간 연동성은 더욱 높아졌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하면서 실업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경제 위기는 또 정치 영역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이 교체되는 선례를 남겼다.

이에 반해 말레이시아는 IMF에 기대지 않고 1998년 9월부터 자본통제 정책을 실시했다. 환율을 미국 달러화에 고정시켰고, 급격한 자본 유출에 따른 위험을 막기 위해 말레이시아 시장에 들어온 외국 자본은 12개월 동안 나갈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또한 말레이시아 링기트(ringgit) 화가 다시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역외 시장에서 링기트 화를 거래할 수 없게 했다. 재정정책 역시 당시 주류 견해와는 반대로 적자재정을 편성했다. 일부 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도산 위기의 대기업들은 국가의 적극 개입으로 대부분 구제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998년 당시 부총리였던 안와르 이브라힘의 해임에 따른 개혁운동으로 인해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처럼 정권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경제 위기 이전의 권력 구조와 정치 엘리트는 보존되었다.

경제 위기 초기 국제사회의 관심을 끈 것은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이었지만, 시선은 곧 말레이시아의 해법으로 옮아갔다.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정책과 고정환율제가 발표되자 IMF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시대착오적이며 시장 논리에 역행하는 퇴행적 조처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물론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처럼 조심스럽게 지지하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는 비판적이었다. 당시 총리인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 실물경제의 건전성과 단기외채의 리스크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아시아 경제 위기가 서구 국가와 다국적 자본에 의한 음모라는 발언까지 해가며 자신의 정책을 옹호했다.

정치적 이유로 IMF 처방 거부

이렇게 처방은 서로 달랐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도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대응 방법은 계속 논란의 대상이다. 말레이시아 정부와 몇몇 학자는 자국의 위기 극복 방안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1999년과 2000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말해주듯, 말레이시아는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난 듯하다. 또한 고정환율제는 위기 상황에서 말레이시아 기업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고 안정된 사업 환경을 만들어냈다. 옹호론자들은 이러한 노력으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말레이시아의 대책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 역시 빠르게 경제 위기를 벗어났으며 다시 성장세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히려 IMF의 처방을 받아 혹독한 구조조정을 했던 한국의 성장세가 말레이시아보다 더 뚜렷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경제 위기 극복과 자국민 보호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희생하는 방향으로 정부 대응이 이루어졌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점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대응책 이면에 감춰진 국내 정치 공학이다. 1980∼1990년대 말레이시아 경제성장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마하티르 전 총리는 말레이시아 경제의 아버지로 불린다. 마하티르로서는 자신이 쌓아온 경제적 금자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IMF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순순히 응하고, 국가 경제의 통제권을 내어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하티르와 그가 속한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는 경제 업적, 그리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국가의 전폭 지원을 받아 몸집을 키운 신흥 대자본의 정치적 지지에 기대고 있었다. 따라서 경제성장이 중단되고, 대기업이 도산하거나 심각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든 피해야만 했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다종족 사회인 말레이시아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말레이 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신경제 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 인들에게 경제적 특혜를 주어왔던 신경제 정책의 폐지 또는 약화는 큰 정치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말레이 민족주의에 기초한 마하티르 자신과 집권당의 정치적 정통성 및 정당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컸다. 또한 신경제 정책과 말레이 인 특혜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말레이 인 자본가에 대한 국가의 특혜를 합리화할 유일한 방안이기도 했다. 결국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경제 위기 해법은 경제적 계산뿐만 아니라, 마하티르와 그의 집권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대책이기도 했다.

ⓒReuters=Newsis말레이시아에서도 우리나라처럼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보석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위).
경제 위기 이후 한국에서는 여야의 정치 권력 교체가 일어났다. 경제 위기와 권력 교체는 광범위한 개혁을 가능케 했다. 과거의 정경 유착, 불투명한 기업운영 관행, 사회 전반의 부패에 대대적 비판이 가해졌고 이를 극복할 여러 개혁 과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생겨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개혁이 어떤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면밀히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 10년 후, 지금 한국 사회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노동 유연성 제고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개혁’은 경제 위기가 몰고온 대량 실직에 더해 만성적인 고용 불안의 그림자를 한국 사회에 드리웠다. 그리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 청년 실업의 확산을 가져왔다. 이런 부작용은 다시 사회·경제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졌다. 종국에는 피흘려 쟁취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권위주의적 발전 국가에 대한 향수까지 낳았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경제 위기가 정치 권력의 교체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고 독립 이후 지금까지 집권해온 UMNO에 의한 권위주의 정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 권력의 민주화 말고도 더 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달리 별다른 고통 없이 경제 위기를 넘긴 대가로 꼭 필요했던 정치·경제·사회 개혁의 기회를 놓쳤다. 투명성과 책임성이야 어찌되었든 나의 경제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부패와 도덕적 해이도 상관없다는 식의 사고가 말레이시아 국민에게 더욱 강화되었다.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마땅한 기업도 정치적 혜택을 받아 대부분 구제되었다. 대표적 예가 마하티르의 아들이 소유했던 부도 위기의 해운회사를 국영 석유회사가 비싼 값으로 인수해준 것이다.

정치·경제·사회 개혁 기회 놓쳐

2003년 마하티르가 총리 직을 사임하고 압둘라 바다위가 새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 새 총리 아래에서도 여전히 총리, 총리 측근, 정부·집권당 고위 인사와 관련이 있는 기업은 혜택을 받아 새로운 재벌로 등장하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의 도덕적 해이도 변함이 없다. 지난 몇 년간 말레이시아 정부는 파산 위기에 있는 ‘민자 유치 사회간접자본 건설 사업’을 구제하기 위해 3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지출을 감수했다.

또한 압둘라 바다위의 아들이 소유한 기업인 스코미를 비롯해 사위가 관련된 기업 등이 국영기업 또는 정부와 부적절한 거래를 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일부 정치인은 외제 자동차 수입면허에 대한 특혜를 받고 이 면허를 되팔아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압둘라 바다위 총리는 취임 직후 부패 일소와 개혁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과거의 정경유착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2007년 ‘IMF 우등생’ 한국과 ‘반항아’ 말레이시아의 지난 10년간 성적표는 이처럼 다르면서도 같다.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는 두 나라 모두에 더 큰 숙제를 남겼다. 폐허 위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 한국은 지금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온전한 상황이 아니다. 한편, 위기 상황에서 어떠한 개혁도 외면했던 말레이시아는 당장의 고통은 피했는지 모르지만 경제 위기를 몰고 온 수많은 근본 원인을 그대로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기자명 이재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연구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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