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총자산 13조원의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8조원을 회수하는 방법은 카지노뿐이다”라는 얘기는, 수공의 4대강 사업 참여계획이 나올 때부터 정치권에서 나오던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다들 반쯤은 농담 삼아 했던 것도 사실이다. “8조원을 어떻게 메우냐고? 카지노라도 하겠지 뭐.”

말이 씨가 됐을까. 수공이 정말로 대형 도박판을 벌일 모양이다.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구 병)과 대구광역시 등이 4대강 사업과 연계해 추진하는 지역개발 사업인 ‘에코-워터 폴리스’(Eco-Water Polis)에는 20만t급 규모(가로 200m 세로 30m)의 외국인 카지노용 크루즈 선과 경정장 등 사행산업이 대거 포함돼 있다. 크루즈 선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공연장, 콘도, 극장 등을 포함해 연 1조원 규모로, 경정장은 연 1500억원의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9월10일 한나라당과 대구시 간의 당정협의회에서 제안된 이 계획은 20여일 뒤인 9월29일에는 수공에 공식 건의된다. 대구시는 이날 수공에 보낸 공문에서 “성공적인 4대강 사업을 위해 에코-워터 폴리스 사업을 귀 공사의 수익사업으로 적극 추진해 주시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사실상 카지노와 경정장 사업으로 4대강 사업 투자비를 매우라는 제안을 한 셈이다.

수공의 반응도 적극적이었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수공으로부터 입수한 ‘수변구역 개발 추진 관련 관계기관 회의결과’라는 문건을 보면 에코-워터 폴리스 사업 추진 태스크포스팀(TFT) 구성을 위한 회의가 열린 것은 9월25일이다. 수공이 대구시로부터 공식 제안을 받기 나흘 전이다. 하지만 이 회의는 대구시·경북도와 함께 수공 경북지역본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버젓이 수공 회의실에서 열렸다. 수공이 이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로 처음부터 함께했음을 짐작케 한다. 보름 뒤인 10월9일 다시 회의가 있었다. 이날 회의에는 수공 쪽 실무 담당자가 참여한 가운데 실무 TFT를 구성했다.

회의 결과를 보면 수공 경북본부가 TFT의 주체로 명시돼 있다. 사실상 사업추진이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김건호 수공 사장은 지난 10월23일 국회 국토해양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강창일 의원에게 관련 질문을 받고 “TFT가 아니라 지역본부장이 어느 지역에나 있는 간담회에 참석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4대강 사업에 발 담그더니 도박판 벌여서 빚 갚으려 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범일 대구시장은 10월14일 대구시의회에 나와 이 사업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과 직접 접촉해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고 말했다.

‘에코-워터 폴리스’ 계획도(맨위)와 예시된 크루즈 선(위).

물 위에 카지노 띄워도 수공사업?

물 위에 카지노를 띄우니 도박 사업도 수공의 사업 분야라고 한들 곧이들을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왜 이런 ‘무리수’를 둘까. 그만큼 수공의 사정이 안 좋다. 김진애 의원은 수공이 내부적으로 세워 둔 ‘외부자금 조달 계획’, 즉 빚내기 계획을 함께 입수했다. 이 자료를 보면 올해 9500억원 수준이던 차입금이 2010년에는 4조9000억원, 2011년에는 5조8000억원으로 훌쩍 뛴다. 2012년에 1조5000억원을 차입한 후 2013년 이후부터 다시 3000억원대 아래로 내려가게 돼 있다. 정확히 4대강 사업 공사기간인 3년 동안에만 12조원이 넘는 차입금이 발생한다. 이 금액은 지난해 말 수공의 총 자산규모와 같다. 하루빨리 빚을 갚아야 하는 절박함이 수공을 도박사업에까지 기웃거리게 했다는 걸 짐작케 한다.

이자 부담은 둘째 치고, 제대로 차입이 이뤄질지부터가 문제다. 지난 11월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투자자를 모으지 못해 ‘겨우’ 1000억원의 채권 발행에 실패한 바 있다. 정부의 재정적자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꾸만 공기업에 국책사업을 떠넘기는 상황을 시장이 걱정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판국에 3년간 12조원을 채권으로 조달하겠다는 건 무슨 배짱일까.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사실상 정부가 나서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보증을 서거나,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연기금으로 채권을 사는 방법이 있다. 당장 채권이야 소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국가 부채가 부담스러운 현실은 더 꼬인다. 수공이 대규모 증자를 단행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방법도 동원할지 모른다”라고 내다봤다.

난데없이 떨어질 8조원 빚더미 때문에 미리부터 머리를 싸매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2008년 당시 수공의 부채비율은 불과 19.6%였다. 초우량 기업이다. 실제로 지난 6월 국토해양부가 4대강 사업 일부를 수공에 떠넘기자, 수공은 두 달의 검토를 거쳐 8월에 불가 의견을 낸 바 있다. 물론 묵살됐다.

다음 달인 9월25일 기획재정부와 국토부가 참여한 제35차 국가정책조정회의 보고서 ‘4대강 살리기 수자원공사 참여방안’은 수공 비극의 집약본이다. 이 보고서는 수공이 4대강 사업에 8조원을 투자할 때 “부채비율이 2008년 19.6%에서 2013년 139%까지 상승하나 타 공공기관과 비교 시 아직 낮은 수준임”이라고 적고 있다. 초우량 기업을 5년 만에 부채비율이 7배나 올라간 부실기업으로 만드는 계획치고는 퍽 무심한 표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아라뱃길(구 경인운하)공사현장을 방문하여 현장 보고를 받았다. 아라뱃길 축소모형이 전시된 시관에서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설명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채권발행에 따른 금융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적고 있는데, 이 계획에 따라 2010년 예산안에 출자 형식으로 800억원을 올려놓았다. 4대강 예산이 많다는 비판을 피하겠다고 8조원을 정부예산에서 수공으로 빼돌려 ‘눈속임하는 비용’이 내년에만 800억원이라는 얘기다. 이 돈은 2010년 서울·부산·광주의 학생 급식예산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

끝이 아니다. 보고서는 2011년 2550억원, 2012년 3750억원, 2013년과 2014년에는 각 4000억원의 금융비용이, 단지 4대강 사업 투자비용 때문에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것을 모두 합치면 5년간 들어가는 ‘눈속임 비용’은 1조5000억원, 연평균 3000억원이다. 계속 급식비와 비교를 해보자. 2010년 전국 모든 시·도교육청이 낸 급식예산을 다 합치면 4170억원. 여기서 경기도에서만 도의회가 650억원을 삭감했으니, 결과적으로 3500억원이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이 초중고생의 점심값으로 쓰는 돈이다. 

내년 예산에서 눈속임하는 비용 800억

도시계획 전문가인 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수공이 개발이익으로 8조원을 환수하려면 개발수익률을 12%로 잡아도 80조원 규모의 개발사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분당 신도시 4개 규모다. 자체 수익사업으로 환수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가정책조정회의 보고서조차도 4대강 사업이 수공을 망칠 것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다음 두 대목을 보자. 보고서는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수공의 재무상태 등을 감안, 재정지원 규모·시기·방법 등을 구체화”한다고 적고 있다. 사실상의 재정투입 예고다. 201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김진애 의원은 “결국 올해 예산안에서 빼돌려 눈속임을 한 뒷수습을 다음 정권에서 국민 세금으로 하라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사업 추진으로 경영평가 등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한다”고 적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다가는 경영 악화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경영진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 스스로 내세우는 ‘투명한 경영평가를 통한 공기업 선진화’ 원칙을 정부 스스로 어기는 셈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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