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지금은 위인 전집 목록에 빠져서는 안 되는 거인이지만, 그의 당대에는 표에 울고 웃는 수많은 정치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고민한 것은, 한 소녀의 편지를 받고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일화로부터 생생히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링컨은 사진을 활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주력한 최초의 정치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링컨을 비롯한 저명인사의 사진을 찍었던 매튜 브래디는 링컨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의 긴 목을 가리기 위해 옷깃을 세웠으며, 사진을 찍은 뒤에도 수척한 얼굴을 보정하기 위해 세심한 손질을 더했다. 언젠가 링컨은 “나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브래디의 사진과 쿠퍼 유니언에서의 연설이었다”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대중에게 전달되는 시각적 이미지는 정치인에게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한탄하듯이, 오늘날 정치는 정책 논리보다 이미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로꾸꺼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이명박 대통령(가운데). 이 같은 실수가 ‘어수선한 이미지’를 강화한다.

민주적 철학과 진정성이 이미지의 핵심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현실은 현실이므로,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매체 이미지를 재검토해보기로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홍보팀은 이 대통령의 사진과 영상을 검토한 뒤 ‘어색하고 어수선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형 광고업체에 컨설팅까지 의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병풍과 오바마’에서 찾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사진이나 영상에 노출될 때 그 주변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들러리들을 정리함으로써 어수선함을 개선하고, 오바마의 ‘이지적이면서 강인해 보이는 이미지’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매체에 등장한 정치인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국민에게 따뜻한 사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 지도자의 그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5·18 묘지 봉안소에서 파안대소한다든가 국민의례 중에 바지 허리띠를 고쳐 맨다든가 거꾸로 된 태극기를 든다든가 하는 이미지들로 상징되듯, ‘어색하고 어수선한’ 점을 넘어 국민에게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실소의 대상이나 되는 장면들이 연출되어 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단순히 ‘주변을 정리하고 오바마를 따라 하면’ 이미지가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문제 의식은 좋았으나 어이없는 답을 써낸 꼴이라 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여론을 주도하기도 하지만 여론을 반영하기도 한다. 언론사가 하루에 찍어 온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 중에서 특정한 것을 골라 매체에 내보내는 과정은 이러한 여론 반영 과정의 하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언론에 좋은 이미지로 등장하고 싶다면, 존경받고 사랑받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지적이고 강인해 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지적이고 강인하다. 오바마가 살아온 삶이 그 점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의 이미지는 연출이 아니라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를 카메라 앵글 하나, 동선 하나 바로잡음으로써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본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문제는 민주 국가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철학과 진정성이다. 민주 국가에 대한 굳은 신념과 이를 실현할 노력이 없다면, 턱수염뿐 아니라 얼굴 전체를 털로 뒤집어쓴다 하더라도 링컨이 받은 존경과 사랑을 받기는 어렵다. 이러한 각성 없이 그저 이미지 만들기에만 주력한다면, 정책 대신 이미지로 승부하는 선거운동의 양상을 집권하고 나서도 반복하는 ‘영구 선거운동론’을 채택하는 셈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기자명 허광준 (위스콘신대학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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