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그림
버뮤다 삼각지대, 블랙홀, 패닉… D-20일이 다 되도록 예측 불허인 2007년 대선 종반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후보들도 오죽 답답했으면 역술인을 찾는 횟수가 늘까. 한 유력 후보는 최근 40대의 유명 역술인에게 새벽 5시께 전화를 걸어 집터 풍수를, 다른 후보의 부인은 남편 사주를 물었다. 요즘에는 ‘BBK 점괘’가 추가되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역술인을 찾는 심리적 배경에는 권력 의지와 불안 심리, 구세주 기대 심리 등이 복합으로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상황의 불가측성 때문이 크다.

사실 이번 대선은 변수나 구도 중심의 상황론적 접근 방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예컨대, 숱한 의혹과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가 고공 비행하고 있는 까닭, 10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오히려 이명박 후보가 상승하고 정동영 후보가 하락하는 기현상, 정동영·손학규·이해찬의 3자 연대 시너지 효과가 좀체 나타나지 않는 범여권 주자들의 정체 현상, 출마선언 사흘 만에 20%대의 지지도를 기록한 이회창 신드롬, BBK 김경준씨가 귀국하기 전에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5~10% 정도 하락했지만 정작 귀국한 이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묘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 권위주의 시절 북풍이나 지역감정, 후보 단일화 같은 변수와 구도 읽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미스터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상황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사람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의 눈에 해당하는 ‘사람’을 알아야 태풍의 진행 방향에 해당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 파악, 즉 리더십 분석을 통해 올해 대선을 들여다보자.

이명박, 과정 소홀·절차 경시로 '곤욕'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김경준씨 일가족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유는 견고한 ‘경제 지도자’ 이미지 덕분이다. 험난한 성장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경제 리더십이 대중심리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후보는 마치 총탄이 쏟아지는 고지를 향해 돌진하는 지휘관처럼 목표 달성을 중시하는 과업 지향형인 동시에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이 전개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세 주도형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절대로 안 하고, 이거다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고야 만다. 이러한 결과 지상주의자, 성과 제일주의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과정 소홀, 절차 경시로 인한 불안정성이다.

이 후보는 잦은 말실수와 도곡동 땅 투기 의혹, 이재오 사퇴 파동, 자녀 위장 취업 그리고 작금의 BBK 사건을 겪으면서 불안한 이미지가 증폭되었다. 국민은 난해한 BBK나 김경준씨의 폭로내용보다 그러한 의혹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불안해한다. 결국 이 후보는 남은 기간 ‘불안함’을 최소화하고 ‘경제 지도자’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가 급부상하게 된 것도 이명박 후보의 불안한 틈새 덕분이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그의 불안함에 내심 못마땅해하던 지지자들이 안정감을 주는 이회창 후보 쪽으로 쏠린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그에 대한 적극적 기대 심리보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반사 심리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이회창 리더십은 조선시대 완고한 선비와 소신파 판사를 연상시키는 권위주의 선비형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경기고-서울대-대법관-감사원장-국무총리로 달려온 엘리트의 우월주의와, 대권에 세번째 도전하는 강한 권력욕, 그리고 오랜 판사생활에서 굳어진 원칙주의가 배어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는 국민에게 답답함으로 비쳤으나 2007년 대선에서는 무거움, 경륜, 안정감 같은 긍정적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 다만 이회창 후보는 안정감 외에 아직까지 경제 지도자나 행정가형 지도자의 면모를 제대로 각인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진일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어떠한가. 정 후보의 참모에게 정동영 후보가 뜨지 않는 까닭을 물으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들은 또 BBK 김경준씨의 폭로 공세로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갈수록 하락하고, 이회창 후보는 현 상태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정동영 후보가 단일화를 이뤄낼 경우, 3강 구도가 형성되어 막판 뒤집기가 가능하다고 본다. ‘구도’와 ‘한 방’에 의한 막판 역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 후보가 국민이 바라는 안정과 경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으면,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정 후보는 깔끔한 외모와 정풍 운동의 이미지가 강한 개혁적 신사형으로서 대국민 친화력이 최대 장점이지만, 국민이 원하는 안정적 경제 지도자의 포지션을 하루바삐 구축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 리더십 덕분에 1위, 이회창 후보가 안정이라는 무기로 2위를 달리고 있는 데 비해 정 후보는 어느 쪽도 확실히 구축하지 못한 상태이다. 정 후보가 내놓고 있는 평화경제대통령이나 ‘중통령’, 개성공단 등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미흡하다. 남은 기간이라도 국민의 가슴에 와닿는 경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되, 추가로 구도나 변수의 효과가 보태지기를 기대해야 한다.

문국현, '진짜 경제' 보여주지 못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정치경력이 일천한데도 단기간에 주목된 것은 그의 개혁적 CEO형 리더십 덕분이다. 문 후보는 손(Hand)보다는 머리(Head)를, 머리보다는 마음(Heart)을 움직여야 하며, 세 가지가 동시에 움직일 때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3H 이론’을 내세운다. 문 후보가 강조해온 구성원들의 감동, 기업의 공익성, 사람 중심의 경영은 심리학자 메이어와 켈리가 제시한 인간 중심형 리더십의 주된 특징이다. 문 후보는 유한킴벌리 재직 시절 사장 전속비서실, 고정판공비, 골프 및 술 접대를 완전히 금지시키고 직원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는 등 인간 중심적 리더십으로 개혁 진영의 호감을 받고 있지만, 여태 ‘진짜 경제’의 진면목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지지도의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밖의 다른 대선 후보군이 유권자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군소정당이라는 상황론 요인이 크지만, 리더십의 관점에서 볼때, ‘안정감’과 ‘경제 능력’을 뚜렷이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 이수성 국민연대 후보, 정근모 참주인연합 후보, 장성민 국민선택 후보 등은 저마다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는 안정적 경제 지도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뒤늦게 대선에 뛰어든 문국현 후보가 이들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가 경제를 화두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남은 20여 일 동안에도 김경준씨의 가족을 중심으로 숱한 의혹과 폭로가 터져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는 어느 후보가 안정감과 경제 지도자로서 면모를 보여줄지 면밀히 살펴본 뒤, 최종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기자명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행정학 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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