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오른쪽)가 추석인 지난 10월3일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을 위로했으나, 유족은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명예회복 조처가 없어 실망하고 있다.

새삼 올 한 해를 돌이켜본다. 수입과 지출 대차대조표도 대략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지은 죄(?)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준 상처의 대차대조표도 들여다본다. 전자는 내가 혼자 노력해서 수지를 맞추거나 추가 이윤을 창출하면 되지만, 후자는 나 혼자가 아니어서 늘 상대방이 있다. 그래서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다.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쳇말로 ‘꽝’이기 때문이다. 〈사과 솔루션〉은 바로 후자의 수지를 맞추는 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올 한 해 우리 각자가 미처 털어버리지 못한 사과해야 할 일을 깨끗하게 처리해, 일종의 감정과 인간관계의 수지를 맞추는 건 어떨까? 저자 아론 라자르에 따르면, 사과는 단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갈등과 위기를 해소하고 인간관계를 올바르게 회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사과이며, 그것은 ‘약자의 언어’가 아니라 담대한 힘을 요구하는 ‘리더의 언어’다. 진정으로 용기 있고 진정으로 자신감이 있고 진정으로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만이 진실한 사과를 할 수 있다.

사과는 ‘약자의 언어’ 아닌 ‘리더의 언어’

진정한 사과의 핵심은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진정성에 있다. 사과했을 때 거부당할 것 같은 두려움, 자신의 잘못이 공개되는 데 대한 모멸감이나 창피함이 사과를 주저하게 만들지만, 사과에 대한 공포는 과장된 경우가 대부분이니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사과의 성공은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 실패함으로써 사과에 실패하거나 차라리 사과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저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사과가 실패하는 유형으로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 주목한다. 이런 유형은 상대방에게 사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할 수 있는 가늠자를 제공한다. “제가 어떤 잘못을 했건 사과 드립니다”(잘못에 대해 모호한, 사실은 인정하기 싫은 립서비스 인정), “본의 아니게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잘못한 사람은 없고 잘못 그 자체만 있는 소극적·수동적 표현), “만약 제 실수가 있었다면…”(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조건부 설정), “저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하시니까…”(상대방의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불인정), “크게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자기 잘못을 스스로 축소), “피해를 줬다니 유감입니다”(거만하고 교만한 태도).

“인간의 상호관계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행위 중 하나는 사과를 주고받는 것이다. 사과는 창피함과 불만을 치유하고, 복수에 대한 욕구를 제거하며, 감정이 상한 이들로부터 용서를 구할 수 있다. 가해자 처지에서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고, 떨쳐내기 힘들 만큼 집요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해소할 수 있다. 단절된 인간관계의 화해와 복원이야말로 사과 과정의 이상적인 결과다.”

밑줄을 그을 만한 위의 대목과 더불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힌트 하나. 일반적으로 사과는 잘못한 즉시 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시간을 두고 심적으로 안정된 뒤 사과하는 게 더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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