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선 걸그룹이라는 키워드가 트렌드가 된 게 첫째고,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대활약으로 팀마다 차별화된 이미지를 얻은 까닭도 있다. 각 팀을 차별화한 건 이미지만이 아니다. 음악도 그렇다. 최근 인기를 끄는 노래들이 그렇듯, 걸그룹들도 ‘후크송’(가사나 멜로디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노래)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음악적 특성은 그룹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소녀시대 멤버들이 라이브에서는 다소 실력 차가 있는 반면, 음악적인 부분에서 더욱 우위를 점하는 건 단연 브라운아이드걸스다. 1990년대생이 낀 다른 걸 그룹들과는 달리 막내가 1987년생일 정도의 연륜이 있는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어릴수록 주목받게 마련인 이 치열한 걸그룹 전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음악적 퀄리티를 자랑한다.
디지털 싱글이나 미니 앨범, 즉 싱글이 대세인 지금 음악시장에서 더블 앨범을 발표한 것도 그렇지만, ‘어쩌다’의 용감한 형제와 결별하고 롤러코스터의 지누, 프랙탈 등 실력파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의 곡으로 앨범을 채웠다. ‘아브라카다브라’ 한 곡으로 평가한다면, 그건 명백한 저평가다. 이런 시도는 엄정화의 〈Self Control〉 이후 처음 있는 시도로, 엄정화의 앨범이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던 반면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아브라카다브라’로 얻은 상업적 성과에 음악적 욕심을 더한다. 게다가 타이틀 곡 외에 그들이 추구했던 R&B도 훌륭히 소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실력을 앨범을 통해 드러낸다. 걸그룹의 노래가 아닌 앨범을 한 장 꼽으라면 마땅히 브라운아이드걸스의 〈Sound-G〉이다.
SM, JYP보다 실력 면에서 한 수 위라는 이미지를 가진 YG의 투애니원은 데뷔곡 ‘롤리팝’에서 빅뱅과의 조인트를 통해 다른 걸그룹과는 달리 소녀 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음악 스타일도 지 드래곤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 있다. 과도한 편곡을 자제하고 비교적 단출한 사운드로 후렴구를 돌리면서 기존의 후크송을 변주한다. 비록 후속곡 ‘인 다 클럽’이 표절 논란에 휘말리면서 ‘롤리팝’만큼의 파괴력은 얻지 못했지만 이제 겨우 미니 앨범 두 장을 내놨을 뿐이니, 그들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브아걸’이 수준급
재미있는 건 카라와 티아라의 차이다. 다른 팀들의 사운드가 첨단을 달린다면 두 팀은 복고다. 카라의 경우, 1990년대 댄스 뮤직 스타일의 사운드와 후크송의 공식을 결합한 케이스다. 보컬 디렉팅이나 노래 편곡은 1990년대 댄스 뮤직이요, 멜로디의 구성은 후크송인 것이다. 핑클의 소속사였던 대성기획의 후신, DSP답다. 이런 전략은 걸그룹 시장의 강력한 소비자인 30~40대에게 10여 년 전의 익숙한 기억과 동시대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동시에 체감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예능 프로에서 박수받아 마땅한 근성, 엉덩이 춤 외에도 이런 양가적 전략이 카라를 생계형 아이돌에서 하반기 대세로 승격시켰다.
또 하나의 양동작전을 펼친 그룹이 있다. 티아라다. 그들의 음악에는 다른 걸그룹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트로트적 느낌, 즉 ‘뽕필’이 강하다. 걸그룹 시장의 강력한 소비자가 30~40대 남성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노골적인 시도는 올해 이름이 오르내린 걸그룹 중 티아라가 가장 아래 놓이는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기성세대의 음악은 트로트라는 선입견이 느껴지는 작전이다. 그들을 제작한 김광수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가 SG워너비로 대박을 쳤던 점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급변하는 트렌드에서 똑같은 전략은 두 번 먹히지 않는다. 비슷한 작전이지만, 한쪽은 성공했고 한쪽은 실패했다. 걸그룹을 소비하는 기성세대가 S.E.S와 핑클에 열광했던 세대임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