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방송인 김제동은 얼마 전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세상의 어떤 일이든 97%는 내부에 있고 사실 3% 정도는 외부 요인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은 프로그램 하차의 외압 논란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힘을 가졌다. 그랬다, 역시 그릇이 달랐다. 그는 스스로의 모자람을 지적했다. 그래도 난 1%도 아니고 3%라는 그의 숫자에 영 마음이 쓰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KBS에서 보도탐사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되고 사회를 보던 가수나 앵커가 하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나 KBS 〈스타 골든벨〉 마지막 방송에서 흘린 그의 눈물과 이내 그가 겸손하게 숫자화한 3%에 씁쓸함을 갖게 된다. “웃음에 좌우도 없다”라는 그의 말에서 아이러니하게 우리 모두는 그에게 닥친 정반대의 쓴 현실을 봤다.

풍경 둘. 지난 11월8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에 ‘충성혈서’를 썼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아일보 창업주와 조선일보 사장의 친일 행적 등 일제강점기 시절 4389명의 친일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2001년 12월부터 시작해 8년 만에 이룬 쾌거다. 광복 이후 일제에 적극 공모했던 이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부재했던 우리가, 이제라도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을 남겨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임에 분명하다.

유신 시절로 돌아간 듯한 보수 언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친일인명사전〉(위)을 ‘좌파의 사전’으로 깎아내렸다.

한나라당의 친박계 한선교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현해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논란을 일축하며 민족문제연구소를 ‘좌파연구소’라고 맹비난했다. 연구소 설립의 기원이 됐고, 지금은 작고하신 친일연구가 임종국 선생이 들으셨다면 기가 찰 소리다. 생전에 효창동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연설하던 모습이 아직도 내겐 또렷하다. 그는 영락없는 민족주의자였다. 대체로 그의 청중은 나이 지긋한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쯤 되는 그런 분들이었다. 그런 그의 평생 유지를 받들어 어렵게 이룬 연구소와 사전 제작을 싸잡아 ‘좌파’라 하니, 이에 무슨 대꾸를 하겠는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스스로의 ‘부끄러운 친일’에 사죄라도 하는 것이 기본이거늘, 오히려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을 노린 좌파사관(의) 친일사전”(동아일보 11월9일자)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써댔다. 게다가 임헌영 연구소 소장의 과거 ‘남민전 사건’ 투옥 전력을 ‘좌빨’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유신시대에 조작된 공안사건으로 이미 판결된 내용을, 이들은 마치 유신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똑같이 읊조린다.

풍경 셋. 서울남부지방법원의 마은혁 판사가 요새 곤혹스럽다. 언론 관련법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점거농성을 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정식재판에서 모두 공소기각 판결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농성 중이던 민주당 쪽은 입건조차 않고 민노당 쪽만 약식기소한 것은 “검사의 공소권 남용에다, 형사소송법 위반”이라며 기각했다. 누가 들어도 타당하다. 그러나 조·중·동은 “편향적인 돌출 판결”이자 “판사의 이념이 개입”됐다고 난리다.

 조·중·동은 마 판사가 ‘우리법 연구회’ 소속에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후원금 10만원을 낸 것을 “좌파 편향 판사의 좌파 정치인 후원회 참석”이라며 ‘시뻘건’ 이념 딱지를 붙인다. 끝내 동아일보는 마 판사가 “사회주의 혁명조직 핵심 멤버”(동아일보 11월12일자)였다고 주장한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하게 지내고 어디 선언에 어떻게 연명을 하고 무슨 글을 썼고 언제 무엇을 했고 어떤 자리에 참석했는지, 이 모든 것이 정치 이념으로 재단되는 사회가 또다시 반복된다. 이념의 굴레에 갇힌 이들은, 세 가지 풍경 속 주인공 각각에서 보이는 소박한 웃음·정의·형평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읽으려는 시늉조차 없다. 색 바랜 ‘이념’으로 단죄하는 이들의 목소리만 드높다. 세상이 정말 거꾸로 간다.

기자명 이광석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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