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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웃기는 <얼렁뚱땅 흥신소> '저주받은 걸작' 되나

박연선 작가의 역량, 싱싱한 연출, 연기력 있는 배우들의 열연, 빛나는 희극성을 생각하면 <얼렁뚱땅 흥신소>의 낮은 시청률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종 구질구질한, 나와 똑같은 삶을 사랑하기가 아직 힘들었을까.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 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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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예지원·은성·류승수·이민기(왼쪽부터)는 구질구질하고 비굴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 군상을 희극적으로 연기한다.  
 
안타깝게도 올해의 KBS 미니시리즈는 봄부터 지금까지 ‘저주받은 걸작(혹은 준 걸작)’의 연속이다. 봄?여름에는 SBS의 <내 남자의 여자> <쩐의 전쟁>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위세에 <마왕> <경성 스캔들> 같은 수작과 <꽃 찾으러 왔단다> 같은 소신 있는 착한 드라마가 밀리더니, 가을 시즌에는 MBC의 <태왕사신기>, <이산>에다 SBS <왕과 나> <로비스트>의 싸움에, 남북 문화 교류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할 만한 <사육신>을 비롯해 <얼렁뚱땅 흥신소> <인순이는 예쁘다>가 숨도 못 쉴 정도로 눌려 있다. 세 편 모두 작품의 질을 생각하면 낮은 시청률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종방을 향해 달려가는 <얼렁뚱땅 흥신소>(박연선 극본·함영훈 연출)는, 시청률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그래도 다시보기 6위 기록이 이 작품이 그냥 흘려버릴 작품이 아님을 넌지시 알려준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의 10억 만들기> <연애시대> 등 박연선 작가의 전작을 떠올려 봐도, 이 작품이 번안?각색이 아닌 그의 창작품임을 생각하면 그간 그가 쌓아온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임에 틀림없다. 대다수 16부작이 11회 전후한 시점에서 늘어지고 처지는 결함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으니 구성도 안정적이다.

서울 강북의 구질구질한 백수들의 코믹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올봄 MBC의 <메리 대구 공방전>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메리 대구 공방전>이 그리는 공간이 외국인 민박을 하는 비교적 단아한 한옥(메리네 집)과, 내부 인테리어가 전혀 ‘강북스럽지’ 않은 신축 빌라(대구가 얹혀 사는 도진의 집)인 것에 비해, <얼렁뚱땅 흥신소>의 공간은 덕수궁과 종로, 인사동, 명동 등 낙후해버린 옛 서울 중심가, 도대체 드라마에서 이런 방식으로는 한 번도 비춰준 바 없는 구질구질한 종로구 밑바닥 서민들의 모습을 과감한 시선으로 적나라하게 포착해낸다.

만화가게 주인 용수(류승수), 수강생 아이들이 ‘언제 문 닫아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가난한 태권도장 주인 무열(이민기), 타로점 등 온갖 국적불명 신비주의 술수로 ‘아란샤’라는 점포를 내놓고 아동극 엑스트라 출연에도 감지덕지하는 연극배우 겸 영매사(靈媒師) 희경(예지원), 이 세 인물은 표면적으로는 자영업자이나 돈도 배경도 전망도 없는 반백수, 시쳇말로 88만원짜리 인생도 못 되는 인물이다.

   
  연극배우 겸 영매사 희경(가운데)과 만화가게 주인 류승수(위 오른쪽), 태권도장 주인 무열(위 왼쪽)의 삶은 비루하다. 그들은 부잣집 상속녀 은재(맨 위)의 고고함 탓에 더 희극적이다.  
 
재미의 한 축은 바로 이들의 쪼잔하고 구질구질한 일상과, 비겁하여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보는 재미이다. 돈도 없는데 조직체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천진난만함까지 겹쳐지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자장면 시켜놓고 누가 돈 낼 건지 눈치 보며, ‘그런 심부름은 안 해요’라고 자존심 세우다가도 10만원짜리 수표 몇 장에 와르르 무너진다. 모든 레퍼런스는 만화나 영화이니 그들의 주장이란 늘 ‘아니면 말고’일 수밖에 없다. 모든 말이 농담 따먹기이고 삶 자체가 얼렁뚱땅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전형적인 희극 인물이다. 어릴 적 생긴 트라우마(외상성 신경증)의 실체를 진지하게 탐색하느라 이들과 손잡은 부잣집 상속녀 은재(은성)의 눈으로 보자면, ‘뭐 저런 구질구질하고 실없는 인간들이 다 있나’ 싶을 정도인데, 이들 틈에 끼인 은재의 고고함과 진지함 때문에 이들은 더욱 희극적이다.

이런 작고 섬세한 구석의 재미들을 엮어나가는 굵은 줄기는, ‘황금 찾기’라는, 다소 황당하지만 다분히 최근 인기를 모으는 추리물의 틀이다. 게다가 그 황금이 고종 황제가 감추어놓은 것이니, 덕수궁과 종로라는 공간과 착 붙는다. <메리 대구 공방전>이 채택한 로맨틱 코미디의 틀보다 훨씬 긴박감이 넘치면서, 돈 없는 ‘개털’들의 신세와 황금의 꿈이 대조되어 희극성은 더욱 빛난다.

젊은 연출가 함영훈의 연출은 싱싱하다. 연기력 있는 배우들을 잘 놀게 만드는 여유로움, 온갖 드라마의 백그라운드 뮤직을 삽입한 놀이적 감각(전문가들이 보물지도를 감정하는 장면에서 쓴 <TV 진품명품> 음악은 압권이었다), 강북 중심가 뒷골목을 포착한 과감한 카메라 앵글에, 희극적 속도감까지 잃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청률은 이 모양일까? 구질?비굴 모드를 일상으로 안고 살아가는 인물 군상이 시청자를 불편하게 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와 똑같은, 시종 구질구질한 삶을 전폭적으로 사랑하기는 아직 힘든 모양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이에 대한 쿨한 희극적 접근법이 올해 대중의 태도와 잘 맞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한다. 올해 인기 드라마 중 (시트콤을 제외하고는) 희극이 한 편도 없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메리 대구 공방전> <경성 스캔들>의 비인기는, 지난해 <내 인생의 스페셜>에서 <달자의 봄>까지 이어온 희극들이 나름으로 선방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올해 드라마에서는 시종 돈과 권력과 명분이 피 흘리며 진지하게 충돌하면서, 돈 없는 자의 이야기도 <쩐의 전쟁>처럼 비장하게 드라마틱한 작품이 눈길을 모은다. 올봄에 들어서면서 대중은 현실을 냉소하거나 웃으며 지나쳐버리지 않고, 무언가 끝장을 내겠다는 진지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피 튀기는 듯한 진지함으로부터 조금 비켜서 얼렁뚱땅 눙치는 드라마에게 대중은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무리 투표율이 사상 최저일 것이라 전망되어도, 그래도 대선은 진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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