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에 대한 탁월한 비평 영화인 〈보랏〉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미국식 유머를 배우러 간 주인공이 지적 장애를 소재로 농담을 하려 하자, 유머 강사는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한다. “미국에서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갖고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이란 이를테면 인종, 성별,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 외모 따위일 것이다. 이런 개인적 특징은 그 사람이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이를 놓고 우스개를 삼는 것은 인격을 침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격을 침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이른바 ‘증오 발언(hate speech)’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증오 발언이란 인종, 성별, 종교, 성적 취향 따위에 근거해 상대방을 모욕하는 발언이다.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공직자에 대해 그 사건 자체를 놓고 비판하거나 희화화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어떤 라디오 진행자가 “유대인들은 원래 돈을 밝히죠”라는 식으로 농담을 한다면 증오 발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것은 물론이고,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널리 인정하는 전통을 가진 미국에서는, 증오 발언이 그 자체로 형사상의 범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므로 철저히 금기시된다. 법학자 로드니 스몰라는 증오 발언을 “정신에 대한 강간”이라고 표현한다. 캐나다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인종·종교 따위에 근거해 어떤 집단에 대해 적대적 발언을 하면 그 자체가 불법으로 처벌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외모와 관련한 모욕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미수다〉.

몰상식과 무례함 판치는 텔레비전

이런 기준으로 한국 텔레비전을 보면 어떨까. 다른 건 몰라도 외모에 관한 한, 한국 텔레비전은 몰상식과 무례함의 천국인 듯하다. 천박한 외모지상주의에 찌든 사회의 반영인지, 아니면 사회에 외모지상주의를 살포하는 주범이어서인지, 외모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텔레비전의 작태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출연자의 애인을 불러내는 방송에서 사회자는 애인이 무대 뒤에 나타나자 “오! 예쁩니다! 예쁩니다!” 하고 소리친다. 코미디나 쇼도 아닌 교양 방송에서 초대 손님을 앞에 놓고 사회자는 “허허허, 키가 아주 크시네요” 하고 다짜고짜 외모부터 언급한다. 머리가 벗겨진 출연자를 비추며 사회자와 관객이 낄낄대는 장면을 한참 동안 보여준다.

외모를 놓고 예사로이 모욕하는 방송 분위기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농담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외모에 의한, 외모를 위한, 외모의 방송’이라고나 할 법한 방송업계에서는 그러한 무신경한 관심과 희롱이 누군가에게는 큰 모욕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상식적 배려를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다. 

최근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일반인 출연자가 “키가 작은 사람은 ‘루저’다”라고 말한 게 방영되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이란 옳든 그르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세상에 대한 인식의 성숙도도 다 제각각일 터이다. 문제는 그 출연자가 아니라,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내보낸 방송이다. 녹화 방송이었으므로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는데도 이렇게 모욕적이고 가학적인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외모에 대해 일상적으로 희롱해오면서 무디어진 방송 윤리가 이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반성문은 해당 출연자가 써야 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제의 프로그램은 제목부터 ‘미녀’ 운운하고 있다.

텔레비전이 값싸고 유치한 외모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것은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런 이데올로기를 사회에 주입하려 하지는 말라. 철 좀 들자. 언제까지나 외모 타령만 하면서 유치하게 살 텐가.

기자명 허광준 (위스콘신 대학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