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부자 명단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만한 한국 부자 리스트는 없다. 유일하게 추정 가능한 한국 부자 명단으로는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서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주식 보유 시가 총액 순위가 있다. 여기는 보유 주식 평가액만 반영되기 때문에 금융 자산이나 부동산 자산은 계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런 허점을 감안하고 명단을 보면 11월5일 현재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4조387억원으로 1위, 이건희 삼성그룹 대주주가 3조6623억원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0대 주식 부자 가운데 자수성가형 부자는 한 명도 없다.

이들 부자가 1년에 벌어들이는 소득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추정할 수 있는 큰 덩어리로는 연말 상장사 대주주 현금 배당이 있다. 올해 2월 발표된 2008회계연도 현금 배당액을 보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410억원, 정몽구 회장이 271억원, 이재현 CJ 회장이 180억원, 이건희 회장이 148억원을 받았다.

 

 

 

역시 간접적이지만 2006년 10월 공개된 표준보수월액 명단도 참고해볼 만하다. 표준보수월액이란 건강보험료를 산출하는 근거로, 비과세 소득을 뺀 월 총소득을 뜻한다. 이 자료로 월급을 계산하고 12를 곱해 추적한 이건희 회장 연봉은 삼성전자 한 곳만 120억원. 정몽구 회장은 92억원. LG 구본무 회장 56억원 정도다. 모든 계열사 연봉을 다 조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1994년에는 직업별 고소득자 순위 공개

한때 한국도 고소득자 명단을 발표하던 때가 있었다. 1994년 10월에 발표된 1993년 귀속분 신고소득 1위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으로 151억원이었다. 중견기업과 재벌 기업이 섞인 명단에서 이건희 회장은 52억원으로 9위를 차지했다. 이들에게 부과된 소득세는 35~58%였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45%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주요 재벌 소득세율은 35~37%로 다른 중견 기업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1994년에는 직업별 고소득자 순위도 공개되었는데 직업별 1등은 의사가 20억원, 변호사가 10억원이었다. 연예인 가운데는 고 최진실씨가 3억8600만원이었고 그 뒤를 고현정씨와 유인촌씨가 이었다. 

1995년부터 고액 납세자 명단 공개가 중단된 이유에 대해 국세청 대변인실은  “OECD 과세 표준 모델에서 과세 정보는 비공개라는 원칙이 있었고, 당시 비밀유지 조항을 신설하는 법개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공개 실익이 없고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종합토지세 고액 납세자 명단도 같은 해인 1995년 공개가 중단됐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1847년 이래 부자의 소득과 납세 내역을 공개하다 1983년부터는 납세액만 공개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2005년부터는 아예 명단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할 당시에는 주로 사금융 대부업자가 상위 명단을 차지했다.

미국의 경우는 남북전쟁 때 지금의 북유럽처럼 전 국민 소득 납세 자료를 공개했다. ‘미국 진보의 시대’라는 1920년대에도 잠깐 비슷한 공개 제도를 실시한 적이 있다. 지금은 정부가 부자 소득 순위를 발표하지는 않는다. 다만 잡지 〈포브스〉가 주식 가치 평가 등을 기준으로 세계 부자 순위를 만든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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