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11월4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1만 배의 고통이 채 가시기 전에 돌입하는 단식이다. 얼마나 힘들까. 이건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짐작도 안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 시대를 사는 언론인으로서 언론 악법을 막지 못하면 언론 악법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얘기라도 남기는 게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 최 위원장의 답변이다.
그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 미안한 마음 1만 배이고 감사한 마음 1백 배다. 사실 그에게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 이외에도 많다. 나는 많은 언론종사자가 최 위원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최상재 위원장이 언론 종사자에게 요구한 건 1만 배를 하자는 것도, 같이 단식을 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미디어법과 관련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보도해달라는 이른바 ‘보도투쟁’이 전부였다. 말이 ‘보도투쟁’이지 이건 언론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이 소박한 요구는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을 부탁하는 언론노조 위원장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언론 종사자들. 이건 누군가의 표현대로 ‘비상식적 사회의 비상식적 행동’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한 술 더 뜨는 언론인이 있다. 일부 유통담당 기자들이다. 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723호)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삼성테스코홈플러스(회장 이승한)는 11월1일 유통담당 기자 20여 명과 일주일 일정으로 테스코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테스코 그룹 경영진 면담을 통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해외투자전략 등을 듣는다는 게 취지다. 취지에 공감 못하는 건 아니지만 미심쩍다. 항공료와 체재비 등 개인당 수백만원씩 들어가는 비용을 영국 테스코 그룹에서 댔다는 〈미디어오늘〉 보도 때문이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을 어기면서까지 ‘지금’ 꼭 가야만 했을까. 이 질문 앞에 나의 이해심은 반감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번 취재가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에 속하는지 의문이다. 홈플러스가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공격적 진출로 광주·인천·청주 등 지역에서 논란을 빚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본사 견학’ ‘해외 방문’이라는 명분으로 취재를 다녀온 기자의 기사가 어떤지는 기자가 잘 안다. 특히 경비를 기업이 제공했을 경우 많은 기사가 해당 기업에 우호적이다. 이 사안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로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뉴스가 아니라고 해서 비슷한 모든 취재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이번 해외 취재에 동참한 언론사의 보도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유통기자들이 돌아올 때쯤 최 위원장의 단식도 막바지로 치달을 것이다. “미디어법이 현실화할 경우 언론인과 국민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라며 단식에 돌입한 최 위원장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길까. 물론 그건 그들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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