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 동화에는 ‘공주’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백설 공주’로 알려진 동화의 제목은 원래 ‘새하얀 눈 아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가시장미 아이’이다. 공주 이름처럼 부드럽게 발음되는 ‘신데렐라’ 역시 독일 원어로 직역하면 ‘재투성이’, 의역하면 ‘부엌데기’라는 뜻이다.

단순한 번역 오류라면 다행이다. 모든 독일 동화 주인공이 공주로 둔갑하고,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신발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내는 등 원전의 중요한 부분을 삭제하면서 동화 본래의 뜻은 사라졌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겼던 ‘문화 상징’ 대신, 한국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만 전달되었다. 이양호씨(44·사진)는 그 점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동화 원본을 있는 그대로 완역하고, 동화에 담긴 문화 상징을 낱낱이 풀어주는 해설을 담아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를 펴냈다.

이씨의 공부 이력은 특이하다.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뒤 태동고전연구소에서 3년 동안 한문과 동양 고전을 배워 익혔다. 이후 독일의 대안학교 ‘발도르프 학교’가 운영하는 사범대학을 다녔다. 역사·고전·교육을 오가는 공부 인생 속에서 이씨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를 발견했다. 고전과 예술 교육의 부족이 그것.

이씨는 종횡무진 공부하며 배운 것을 맹렬히 실천하고 있다. 한국에서 잘못 번역되어 제 뜻을 잃어버린 독일 동화를 다시 소개하고, 고전과 예술을 익혀 도덕성을 기르는 배움터를 꾸리려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도 실천의 한 과정이다. 이씨는 요즘 경기도 양평에서 작은 대안학교를 세우려고 여러 교사·학부모와 머리를 맞댄 채 궁리 중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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