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요즘 독자들은 ‘에세이스트’ 하면 고종석 선생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뛰어난 문장과 감식안의 소유자인 그이의 ‘강추’에 힘입어 번역을 결정하게 된 ‘에세이’ 시리즈였으니, 사실 뭘 크게 고민하랴. 더구나 프랑스 밀랑출판사의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의 인상은 “우와, 표지 진짜 예쁘네!”였다(나중에 밀랑의 편집자가 한국어판 표지가 자기들 표지를 업그레이드해 놓았다는 소감을 전해왔다). 게다가 원고 곳곳에서 마주치는 그윽한 아포리즘은 또 어떻고. “미소는 상처 주지 않으면서 나무랄 줄 안다.” “만약 속된 것이 어른이 되는 유치한 방식이라면, 위선은 유치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변태적 방식이다.” “유머는 생각의 미소다.” “중심을 갖기 위해서는 중심을 잃을 필요가 있다. 균형과 중심은 사물이 제자리를 찾도록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유다.”

그러나 문제는 원제의 뜻을 대체로 살린 번역서 제목이 〈걷기의 철학〉 〈와인의 철학〉 〈비밀의 철학〉 〈예비아빠의 철학〉 〈슬픈 날들의 철학〉 등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게 ‘철학 에세이’라는 거였다. 사소한 일상의 언저리에서 건져올린 철학적 사유의 맛이 일품이건만, 오늘날 우리 독서 시장에서 철학 에세이란 그저 논술용 학습 교재쯤이 되어 있지 않던가. ‘지식’이 아니라 ‘생각’을 주는 책으로는 열렬한 초기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는 모양인지, 6개월 만에 10권이나 쏟아낸 이 ‘포즈 필로(Pause Philo)’ 시리즈는 그 어느 장르보다 경쟁이 치열한 서점의 에세이 매대에서 ‘쉼표의 철학’다운 여유를 누리지 못한 채 묻혀버리고 말았다. 멋진 포즈(pose) 한번 취해보지도 못하고….

하지만 지금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주변의 에세이 마니아들로부터, 왜 이 책의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냐는 반응을 접하곤 한다. 그럴 때면 쓰려오는 속을 뒤로하고, 버릇처럼 또다시 이 책들을 펼쳐든다. “삶에는 이유가 없다. 아름답고 본질적인 모든 것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해야만 한다. 이 말은 윤리적 절박함이자 정치적 저항 행위이다.
 

기자명 장의덕(도서출판 개마고원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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