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고려대 교수.법학과)삼성에 근무할 당시 김용철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아니라 회사에 고용된 자다. 따라서 폭로 내용은 의뢰인의 비밀이 아니며, 변호사로서 공익적 사명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변협의 징계 운운은 상식 밖이다.
지금까지 경험에 따르면 누군가 양심을 걸고 내부 비리를 폭로하면 어김없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따돌림을 당했다. 집단 구성원이 그 비리에 적극 가담했거나 적어도 비리에 침묵으로 공모한 경우 더욱 그렇다. 들춰내서 회사 망하는 꼴을 봐야 하겠냐며 경제 논리를 들먹이기도 한다. 

거대 경제 권력에 맞선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물증을 확보하고 되돌려주었다는 이용철 변호사의 후속타에 대해서도 왜 그때 폭로하지 않았느냐며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대다수 언론도 그러했고 그가 회원인 변호사 단체도 그랬다. 적지 않은 국민도 그 장단에 춤추고 술안주로 질근질근 그들의 사생활을 씹으며 동기의 불순함에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본질은 저만치 뒷전에서 서성이다 봄눈 녹듯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언론이나 국민은 그렇다고 치자. 그가 속한 전문가 단체인 대한변협이 그랬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김 변호사가 폭로한 비밀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비밀 누설로 피해를 입게 된 비밀의 주체가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인지, 그래서 신뢰 관계가 강하게 보호되어야 할 것인지를 도외시한 채 단지 변호사 신분이라는 이유로 변호사법과 변호사윤리규정을 들먹였다. 그러나 변호사법 등에서 말하는 변호사란 사건을 위임받아 그 법률 사무를 처리하는 자다. 김 변호사는 삼성으로부터 사건을 수임받은 것이 아니라 그 회사에 고용된 자다. 그리고 그가 폭로한 사실은 회사를 변호하면서 직무상 얻게 된 회사의 비밀이 아니다. 그가 고백한 것처럼 자신과 회사가 함께 저지른 범죄 사실이다.

ⓒ시사IN 안희태대한변협은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왼쪽)에 대해 비밀유지 의무 위반을 들며 징계를 거론했다.
비밀 준수 의무는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기본 의무이다. 형사사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형사 변호인은 의뢰인인 피의자·피고인의 이익 대표자로서 보호 의무를 수행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밀 준수 의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변호사법도 단서 조항을 두고 있고 대한변협의 윤리규칙 제23조에도 공익상 이유와 변호사 자신의 권리 옹호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불공정 경쟁, 뇌물 수수, 편법 세습은 추방해야 할 거악

김 변호사가 윤리규칙의 비밀 공개 금지가 적용되는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그 예외에 해당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공정 경쟁, 국가 직무의 청렴성을 더럽히는 뇌물, 재벌의 편법적 지배구조와 불법적인 부의 세습 등 그가 폭로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추방해야 할 거악이다. 불의에 맞선 그의 행동은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변호사로서 공익적 사명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변호사도 판검사와 함께 형사 사법 정의의 실현을 담당하는 한 축이기 때문이다. 

변협은 보호해야 할 단체 구성원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준법, 윤리경영, 투명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무성을 표방하고 채용한 사내 변호사를 왜 파렴치한 범죄 행위에 동원했느냐며 해당 기업을 엄히 꾸짖었어야 한다. 모처럼 활성화되려는 사내 변호사의 채용 시장이 좁아질까봐 고용주 눈치를 살피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업도 사내 변호사의 채용을 두려워하기보다 윤리경영보다 더 가치 있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경영은 없다는 인식을 다져야 한다. 그것만이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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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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