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라디오를 틀면 귀에 거슬리는 공익광고를 종일 듣는다. “악성 댓글, 당신의 영혼과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흉기입니다.” “악성 댓글은 영혼까지 파괴하는 범죄입니다.” 공익광고 듣는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무슨 댓글 문화에 이리도 험하고 요란스럽게 낙인을 찍는지 그저 듣기에 소름이 돋는다.
 
지난 4월 미네르바가 무혐의로 나온 후에도, 여기저기 사찰과 감청의 부활로 대한민국이 정신없이 어지럽다. 국정감사 현장에서 속속 드러나는 정보기관들의 ‘패킷 감청’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정권 시절에나 봄직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까지 등장했다. 일선 경찰에서는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과 첨부 파일을 감시하는 ‘보안 사이버 검색·수집 시스템’까지 가동한다고 한다. 

패킷 감청이란 쉽게 말하면 인터넷 회선을 오가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간에서 탈취해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패킷 감청 앞에서는, 최근 유행처럼 불었던 ‘사이버 망명’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용자의 메일 서버가 해외에 있더라도 누군가 가는 길목에 진을 치고 속속 열람하는 꼴이다.

댓글 문화를 흉기·범죄로 낙인 찍은 공익 광고.
법적으로도 전기통신사업법 54조의 통신자료 의무제출 규정으로 말미암아 검찰이 누리꾼의 정보를 국내 포털이나 통신 회사에 요구하면 의당 공개하는 것이 관행이다. 한때 9·11 테러 국면에서 미국 정보기관들이 통신기업에 ‘카니보어’라는 패킷 감청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개인 이용자의 정보 열람을 요청하곤 했다. 그런데 버라이즌 같은 초대형 통신 기업은 여러 차례 정보기관의 정보 요청을 거부했다. 이유인즉슨 소비자 개인정보 보호가 우선이었다. 시민의 인권을 지킨다는 명목도 아니요, 그저 버라이즌에게는 소비자를 위한 기업 서비스 원칙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역시나 소비대국의 프로 기업다운 처신이다. 우리네 통신기업과 포털은 어떠한가. 원하면 재깍이다.

이른바 ‘삼진아웃제’라는 것도 저작권법을  이용해 누리꾼의 표현에 재갈을 물리는 방식 중 하나가 됐다. 지난해 아프리카TV 대표가 저작권 위반 방조죄로 구속됐다. 당시 촛불 시위를 24시간 방송한 데 대한 정치적 괘씸죄였다는 판단이 중론이었다. 이는 저작권 위반 혐의로 내린 경고 세 번으로 충분히 게시판을 폐쇄하고 아웃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권 독소조항이라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누리꾼의 말길을 막아서서 윽박지르고 그나마 간신히 소통하는 내용조차 감청과 사찰로 속곳 하나하나 다 뒤지는 형국이다. 이도 부족해 방송에서는 댓글을 사회에 대한 테러로 치환한다. 안티 혹은 댓글의 역기능이 극히 일부임을 부정하고, 그것이 지닌 사회 내 권력 감시의 긍정적 파워를 부정하려 든다.

누리꾼 스스로 정화하도록 하라

생각해보라. 일부 기업가·공직자·정치인 등 권력자들의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폭로하는 데 인터넷의 안티와 댓글보다 더 유효한 수단이 있는가. 내부 고발 행위를 보호해주기는커녕 이에 보복을 가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면 이는 더욱 유효하다. 또한 정당한 소비자 주권을 지키는 데 폭로와 안티의 효과는 이미 도처에서 입증된 바다.

명예 훼손, 사생활 침해와 의도된 비방 등 악플과 안티의 부작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누리꾼의 안티 행위를 악플로 몰고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테러분자로 모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더군다나 그런 식의 공익광고는 가뜩이나 바짝 움츠러든 누리꾼의 ‘표현의 자유’를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협박성 멘트로 다가올 수 있다. 지금처럼 댓글 문화를 상징 권력의 살벌한 광고 카피로 겁주기보다는 누리꾼들 스스로의 규칙 안에서 정화되도록 그냥 놔두는 편이 현명하다.

기자명 이광석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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