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1998년 4월 1군단 헌병대),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1999년 4월 국방부 특별조사단), ‘자살은 아니지만 타살 증거도 찾기 어려워 진상규명 불능’(2009년 10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2년 전 판문점에서 발생한 경비소대장 김훈 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국가 기관의 조사 결과 변천사다.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는 시한 만료를 앞둔 10월 말 회의를 열어 진정받은 군의문사 40여 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서는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결정했다. 사건 발생 이후 3차례에 걸쳐서 자살이라고 발표했던 군 수사기관의 결론은 문제가 많아 인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타살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도 잡지 못했기 때문에 ‘규명 불능’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김훈 중위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맨 왼쪽 선 사람)은 군의문사위 윤원중 위원장(맨 오른쪽 앉은 이)에게 타살 증거와 국방부 특조단의 자살 조작 증거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10월19일, 위원회 위성국 조사1과장은 유족과 변호인을 상대로 조사 내용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고 김훈 중위 부친 김척 예비역 장군은 사건을 접수한 뒤 지난 3년간 자기가 겪은 위원회의 태도를 들어가며 ‘국방부 눈치보기’, ‘특조단의 진실 조작 범죄 봐주기’ 등 불만 사항을 조목조목 따졌다. 그는 “이렇게 부실하고 무성의하게 조사해놓고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발표를 하다니 유족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항의했다.

과연 위원회는 충분한 조사를 하고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렸는가.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위원회의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 불능 결정’은 일찌감치 예견됐는지도 모른다. 군의문사 유가족이 위원회를 불신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진상규명 의지와 능력 문제가 가장 크다. 1996년 봄 김훈 중위 사건 재조사를 진정할 당시 유족과 변호인은 사안의 특수성과 시일이 오래 흐른 점 등을 들어 충분한 조사 인력과 기간을 들여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 복잡한 사건에 대해 단지 조사관 1명만 배정했다. 연인원 수백명의 조사 대상에 족히 수십만 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존 사건 관련 기록, 그리고 중요 참고인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실 등으로 보면 누가 보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조사는 벽에 부딪혀 허송세월했다. 조사 답보 상황을 견디다 못한 유족의 항의와 문제제기가 줄기차게 이어지자 위원회는 조사마감 시한을 겨우 몇 달 앞둔 지난 3월 들어 형식적으로 여성 조사관 1명을 추가 투입했다.

진상규명 의지와 능력 부재로 졸속 결론

위원회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문제였다. 1999년 육군 수사기관에서 김훈 중위 사건을 자살몰이할 당시 군 법무조직 수장을 맡았던 인물이 상임위원으로 있다. 또 김훈 중위 시신을 부검하기도 전에 덮어놓고 ‘자살’로 표기해 유족의 항의를 받고 취소하는 등 부실 부검과 자살 예단 문제로 큰 말썽을 빚은 부검 군의관이 자문위원이었다. 김훈 중위 사건 조사팀장은 국방부가 파견한 영관급 현역 장교였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김척 장군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위원회에 수차례 항의하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으로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김훈 중위 사건과 연관된 군 출신 인사들은 일체 조사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조사의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중위 사건은 위원회를 태동시킨 모태가 되는 사건으로 위원회가 자료집에도 그런 설립 배경을 강조할 만큼 전체 군의문사 사건에서 상징성이 크다. 이런 점에 비춰 위원회가 너무 안일하고 무성의하게 김훈 중위  사건을 처리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방부 특조단이 국과수 감정서 내용마저 조작해 수사발표문에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허위 내용을 게재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조사 방식의 한계도 불신을 키웠다. 위원회는 주로 국방부 특조단 조사 서류와 유족의 진정 서류, 그리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한때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냈던 민사소송 법원의 판결문 등을 비교 분석한 뒤 위원회 나름의 판단을 달아주는 방식으로 쟁점을 정리했다. 조사관 단 한 명이 수행하는 조사 방식 자체가 이 사건을 미궁으로 빠뜨려 규명 불능 결정으로 이어진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조사는 이미 수사받은 인물들 보다는 수사를 받지 않은 이를 중심으로 외곽에서부터 접근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군은 끝까지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제대로 결과물을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위성국 조사과장은 “시간이 많이 흐른 점이 가장 큰 한계였다. 국방부에 자료가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고, 진술 이외의 상황일지 등 근거자료가 없어진 것도 문제다”라며 조사의 한계를 시인했다.

물론 이런 조사의 한계 속에서 위원회가 기존 군 수사기관에서 3차례에 걸쳐 발표한 자살 결론을 수용할 수 없다고 결정하기까지는 당시 군당국이 왜곡하고 날조했던 사실을 상당부분 밝혀냈기 때문이기는 하다. 과거 특조단에서 김훈 중위가 자살할 만한 동기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한 데 대해 위원회는 조사 결과 모두 사실 무근의 날조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자살 동기와 징후도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냈다. 기존 군 수사기관 조사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자살로 몰아가기 위한 왜곡되고 거짓된 조사란 점을 밝힌 것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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